‘여자도 군대에 가라’고 말하기 전에…

남성적 군 조직, 그 밑엔 여성성에 대한 폄하가 깔려있다

군대는 분명히 남성적인 조직입니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어느 군대나 수적으로도 남성이 훨씬 많고 군인이라고 하면 누구든 건강하고 날렵한 남성의 몸을 당연하게 떠올리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선행연구들은 군대를 젠더화된 기관/조직으로 개념화해왔습니다. 이 조직의 지배적 정체성은  ‘전사 남성성(warrior masculinity)’입니다. 

‘전사 남성성’을 공고하게 해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하나는 ‘이성애 하기(do hetrosexuality)’이고 다른 하나는 ‘팜므포비아(femmephobia)’입니다. 전자는 남성 개인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과의 성애를 과시하는 행위로 연결된다면, 후자는 군 조직 내 불평등한 젠더 위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작동됩니다. 이때 팜므포비아뿐만 아니라 호모포비아 또한 남성성을 구성하는데 이용됩니다. 결과적으로, 군 조직의 남성성은 여성성과 동성애에 대한 폄하 위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팜므포비아(femme+-phobia): 여성에 대한 공포증, 위키피디아 정의에 따르면 여성의 존재, 여성성 혐오 또는 적대를 의미함.

논문의 저자는 이러한 군대 조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50명의 미군 여성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 중 31명은 사병이었고 19명은 장교였습니다. 인종으로 살펴보면 68%가 백인으로 가장 많았고, 현재 군대에 복무 중인 사람은 절반 정도였습니다. 인터뷰 결과 대부분(47명)의 대상자는 군대 내에서 성희롱을 포함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괴롭힘의 내용 별 경험 수준의 구체적 수치는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보다 주목한 지점은 이런 일상적인 괴롭힘의 수준이 이전보다 강해지게 되는 경험을 공통적으로 나타낼 때였습니다. 조사 대상자 중 59%의 인터뷰 내용에서 그러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문제상황1. 군대에서 남자와 연애하는 게 알려질 때

인터뷰 결과 군대에서 여성이 남성과의 연애를 들키는 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성적인 괴롭힘의 위험이 높아졌는데, 새롭게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거나 기존의 성적 괴롭힘의 수위가 훨씬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났어요. 원래 그녀의 업무가 아니던 사무적 업무를 배정하는 등 관료적인 형태의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성적 괴롭힘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저자는 이성애적 연애 관계를 들킴으로써 군대 내 남성들은 동료 여성을 성적 대상화가 가능한 존재로 다시금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기존에 많은 여성 군인들이 소위 말하는 ‘명예 남성’으로서 자신의 여성성을 감추고 조직의 남성적 문화에 스스로 맞춰왔을지라도 이성교제 사실로 인해 그들이 군대 내 소수자이자 외부자적 존재인 여성임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 된 결과라는 거예요.

군인 남성과 군인 여성이 교제하는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그 대응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경험의 차이는 군 조직의 뚜렷한 성차별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국 군대 내에는 다른 계급의 군인들끼리의 관계를 금지하는, 소위말해 ‘사내 연애 금지’ 조항(fraternization)이 있어요. 위력에 의한 강제를 방지하기 위함이죠. 따라서 상급자가 이 조항의 위반 사실을 알았을 때 벌하고 싶다면 그것을 상부에 보고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상급자는 군인 남성과 교제한 여성 군인에게는 성적 괴롭힘의 수위를 높이는 것을 통해 개인적 처벌과 같은 결정을 내린 반면, 군인 여성과 교제한 남성에게는 전근 혹은 수개월간의 외부 훈련 명령을 내리며 행정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했습니다.

💡문제상황2. 군대에서 여성이 임신할 때

그렇다면 군대에서 여성이 임신을 하면 어떤 결과를 보였을까요? 연애와는 다르게 성적이지 않은 괴롭힘의 경험이 증가했어요. 구체적인 경험 내용에는 임신 중단 권유, 쓸모없는 군인이라는 모욕, 임신 및 육아 제도에 대한 접근 차단 등이 있었습니다. 임신은 군인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기제로 작용하기보다는 군 복무에 부적절한 신체 혹은 그러한 신체를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로 해석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군대라는 조직이 신체적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특이성을 갖고 있는 점과 이상적인 군인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로 기준잡혀 있는 젠더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까닭입니다. 그 결과, 임신한 여성 군인에게 적용되는 제도들(신체 훈련에서 배제되거나, 정기적인 병원 방문을 위한 스케쥴 우선 배정 등을 포함)은 동료 남성 군인들에게 자신들은 접근할 수 없는 특혜를 주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남녀 동료 모두에게 그런 제도를 악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임신했다는 적대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어요. 조직-관료 차원에서는 임신한 여성 군인의 존재 자체가 남성적 조직 환경을 저해한다고 인식하면서 이들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통해 그것을 시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인터뷰한 많은 군인 여성들은 자신을 '명예 남성으로 정체화하기'라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의 전략도 존재했는데, 스스로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남성동료 혹은 상사에게 보호 받을 대상으로 위치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들 모두 각자만의 다양하고 다른 전략을 구사하며 초남성적인 군 집단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연애와 임신으로 실패를 겪고 말았지만요. 어쨋든 이들처럼 젠더화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들이 취하는 전략은 다양합니다. 그러한 전략의 다양성과 유효성을 검토하는 연구들이 이뤄질때 여성의 조직생활 방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현격히 확장시킬 수 있을 겁니다.

• 한국의 군 조직에 근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군대 내의 불평등과 괴롭힘, 폭력의 경험들에 대해 드러내고 논의하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군대 내 폭력 사건들과,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여러 죽음들이 존재함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여성 부사관이 “성폭행 당했다”는 유서와 함께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동안 베일에 감춰온 것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터부를 깨고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나아갈 기반을 마련해야할 때입니다.

•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현대의 많은 조직도 남성의 몸을 '이상적 노동자'로 상정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여성의 몸은 부적절한, 더 나아가는 조직에 폐가되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최근 한 기업이 임신한 여성에게 퇴사를 종용한 뉴스도 그러한 인식의 여전함을 드러내죠. 게다가 조직 내 여성들의 성차별/폭력 경험 또한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죠. 따라서 여성들이 조직생활을 그만두게되는 이유는 임신, 육아에만 한정되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정책은 여전히 임신,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지원 정책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한 정책적 한계를 벗어날 때, 비로소 여성의 경력단절, 낮은 출산율과 같은 산재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