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폴리버리 레터는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육아 휴직 제도나 아이 돌봄 서비스에 대한 연구들을 다뤄왔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돌봄’이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돌봄’은 대체 무엇이고, 어떤게 문제인 걸까요? 이번 폴리버리 레터는 기존에 우리 사회가 ‘돌봄’을 논하는 두 가지 갈래를 소개하고, 새로운 대안적 길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제10차 헌법 개정에 ‘돌봄’의 가치를 녹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볼 것을 제안해보려고 해요.

이야기에 앞서 혹시 ‘헌법 개정이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았나요?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 투쟁의 결실을 반영한 ‘87년 헌법’에 머물러 있어요. 반면 헌법이 멈춰있던 30여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97년 국가부도 위기를 맞으며 노동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고, 여성들의 학력 수준과 사회 진출 비율은 높아졌으며, 가팔랐던 경제 성장 속도는 둔화되었고, 고령화-저출생의 문제는 심화되었죠. 따라서 제10차 개헌에 대한 논의는 학계를 중심으로 '지금의 헌법이 사회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어요. 정치권에서도 제18대 국회에서부터 개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개헌이 정치적 계산이 복잡하기도 하고, 거대 이슈인 만큼 부담이 큰 의제여서 본격적으로 정치 의제화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개헌의 필요성은 분명한 만큼, 적절한 때가 왔을 때 논의가 졸속으로 이뤄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개정 헌법에 새롭게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해요.

우리 사회가 ‘돌봄’을 논하는 두 가지 갈래는 헌법상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시작됩니다. 즉,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견해를 헌법 119조 <1항>을 중심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119조 <2항>을 중심으로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 헌법 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이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 헌법 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전자는 ‘시장’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자유주의’의 입장이고, 후자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분배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권과 ‘공동체’를 우선하는 ‘공화주의’ 입장이에요. 전자는 보수진영의 논리로, 후자는 진보진영의 논리로 보기도 하죠. 어느 나라에서나 두 견해는 공존하고 있어요. 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한 쪽으로 힘이 쏠릴 때도 있지만요. 다만, 저자는 대립하는 두 견해만으로는 현실 속 개인의 삶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들은 시장에 참여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삶의 일부를 서로 나누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돌봄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법, 시장 vs 정치?

위와 같이 대립하는 견해는 돌봄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가져옵니다. 먼저, 자기 이익 실현에 충실한 개인과 시장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돌봄노동’이 제공되는 ‘시장’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대안은 결국 계급이 더 낮은 다른 여성에게 돌봄의무를 돌봄노동으로 전환해 전가시킬 뿐이라는 문제를 낳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족 가사도우미나, 홍콩의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떠올려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동시에 돌봄이 필요해도 시장에서 그 서비스를 살 능력이 없다면 돌봄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돌봄이 정말로 필요한 곳에서는 오히려 돌봄을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도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돌봄 불평등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개입’으로 해결한다면 어떨까요? ‘공화주의’의 입장에서는 돌봄 불평등을 개인의 책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전체의 문제로 정의해요. ‘누구나 일정 시기에는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돌봄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연대 책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정치적 가치를 내세운 선언만으로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돌봄 실천을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까요? 또한 개인이 돌봄을 행할 때 ‘공동선’이라는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며 행동한다고 볼 수 있는 걸까요? 저자는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돌봄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무급으로 돌보며 행복을 경험하는 것은 실천의 의도나 추구하는 가치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무엇이 더 존엄한 가치인지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 자, 그러면 ‘돌봄 가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 헌법은 어떤 식으로 그 가치를 담을 수 있을까요? 먼저 개인이나 정치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인 것’들의 영역에서 발현되는 ‘돌봄 가치’를 이해해보자고 주장하고 있어요. 개인과 개인들 사이에 형성되는 ‘사회적인 것’, 즉 관계적 가치에 주목하자는 건데요, 배려, 공감, 신뢰와 같은 것들을 떠올려 볼 수 있어요. 돌봄을 주고 받는 개인들 사이에서 ‘덕 윤리’가 발현되고 향유된다는 점이 기존의 돌봄에 대한 시장 중심의 논리나, 규범적이고 정언명력적 논리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 이런 개인들의 돌봄 주고받기는 마치 ‘선물’과 같은 형태로 이해해야 해요.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가치가 이들 행위의 목적인 것이죠. 이런 선물과 같은 돌봄 주고받기는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이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와 혼자가 아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며, 내가 사회에 속해 있다는 자아를 형성’하게 해줍니다. 이를 통해 개인들은 도덕적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돌봄의 사회적 가치도 발현될 수 있어요.

• 저자는 이런 상호주관적 돌봄 가치를 모든 개인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상호주관적 돌봄 가치를 향유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맥락들이 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가 돌봄 제공을 단지 의무로 규정하거나,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면서 돌봄에 대한 접근이 시장에서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돌봄을 헌법적 가치로 명시하고 분명하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 우리는 경제적인 풍요, 더 나은 복지체계가 있다면 안락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개인(시장)과 공동체(분배정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싸워왔어요. 그러나 그러는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논의는 놓쳐버렸던 것 같아요. ‘그 무엇’ 없이 돈과 복지제도만으로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5천달러를 돌파(한국은행, 2021년 기준)했음에도, 한국인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현재(2022년 발표, 2019년 기준)까지도 OECD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요. 그렇기 때문에 ‘돌봄은 개인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헌법이 이를 명시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귀기울여 볼 만해 보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놓쳤던 것과 이후 우리 사회가 ‘돌봄’을 헌법적 가치의 중심에 둔다면 만회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해볼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