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 곳곳에서 돌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전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실시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일터와 학교 등 사회 핵심 영역이 일시정지 상태가 되면서 돌봄 수요가 급격하게 팽창한 것이 그 이유인데요. 기존에 학교, 유치원, 문화생활 공간 등 공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지던 돌봄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요양기관과 같은 시설 돌봄 역시 부담이 늘어나면서 '돌봄의 위기'가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논문은 이런 사회적 위험 사태가 코로나19 이전부터 고질적으로 존재해 왔다고 말합니다. 팬데믹 사회가 지속됨에 따라 기존의 위험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죠. 팬데믹 사태로 가시화된 돌봄 위기는 곧 사회 전체의 위기이자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독일은 이 ‘돌봄 빨간불’로부터 사회를 지켜내기 위해 이전부터 돌봄을 정치 차원에서 논의했다고 해요. 지금부터 독일이 세 가지 흐름에 따라 돌봄을 정치 의제로 다루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현대 사회의 세 가지 큰 흐름은 제목에서 제시한 것처럼 고령화, 디지털화, 코로나19 팬데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화의 주요 결과 중 하나인 고령화는 노인 돌봄노동 수요를 증가시키면서 돌봄을 정치 영역, 다시 말해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났는데요. 독일에서는 1995년 요양보험을 의무화하는 한편, 2003년 만 3세 미만 아동에 대한 보육 서비스를 확충하는 등, 가족이 아닌 국가가 돌봄의 주 책임자가 되는 정책으로 환영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돌봄노동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와는 반대로,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편중되고, 저임금과 같은 '나쁜 일자리'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여성의 임금이 평가절하되는 것과, 무보수 가족돌봄을 우선시하는 독일의 보수적인 정책 기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확산된 디지털화는 이런 문제를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디지털화가 어려운 돌봄노동에 플랫폼 경제가 유입되면서 돌봄노동이 일종의 합법적인 저임금 서비스로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이 플랫폼의 평가 시스템에 종속되고, 노동자들은 새로운 정보기술에 대한 교육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등 새로운 스트레스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경제적인 생산성에 국한해 판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술직에 비해 돌봄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됩니다. 돌봄이 사회에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값싼 노동’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에서 돌봄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시켰을까요?

새로운 돌봄의 위기, '팬데믹 위험사회'

고질적인 돌봄의 공급 부족 상황에서 코로나19의 등장은 사회 다방면에서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돌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바로 돌봄이 다시 가족의 영역으로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근대화 이후 지극히 축소되었던 가족이라는 공간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돌봄도 다시 가족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인데요.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급격히 증가한 돌봄 부담을 전적으로 떠맡았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경제활동이 축소되고, 일부는 가정에서의 폭력에 노출되기까지 했습니다. 병원이나 노인 요양 시설 등에 고용된 돌봄노동자의 경우에도 인력난으로 더 높아진 노동 강도로 일하는 악순환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회의 '돌봄의 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해야 했습니다.

논문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돌봄노동에 이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돌봄노동의 중요성이 사회 전체에 급격히 확산되면서 사회적 인정을 취득한 한편, 본래부터 취약했던 돌봄 체계가 다방면으로 붕괴되는 위기를 겪도록 했다는 것인데요. 특히 독일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이 피고용 부문에서 여성 돌봄 인력을, 가내 돌봄 및 가사노동에서 거의 모든 어머니와 아내, 딸들을, 노인 돌봄에서는 외국인 여성을 '식민화'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팬데믹 위험사회, 정치 의제로서 돌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코로나19는 문명 위험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을 즉각적으로 공격하는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위험사회'의 도래를 알렸습니다. 논문은 위험사회를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민주주의라고 역설합니다. 인류에게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던 과학이 새로운 종류의 위험을 생산하게 되면서, 위험을 정치적인 영역에서 의제화시킴으로써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죠.

2014년 결성된 민간 네트워크인 '돌봄 혁명'은 이러한 위험사회 논의와 유사한 관점에서 상호 돌봄을 지향하는 급진 민주주의 사회를 주창합니다.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탈성장'에 입각한 인간의 필요 및 다양성을 목표로 한 공동체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이 네트워크의 슬로건인데요. 독일 정부와 노조의 공식 입장이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로의 방향 전환이라면, '돌봄 혁명'은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평등하고 공공성에 입각한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이 여전히 성장주의와 함께 가는 노선을 포기하지 못한 반면, '돌봄 혁명'이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는 팬데믹 위험사회를 극복할 돌파구가 될지도 모릅니다.

• 생산보다 생명 또는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생태적 가치를 중심에 놓는 방향으로 사회 패러다임 전체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또한 전지구화의 영향으로 돌봄노동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일국적 차원을 넘어 지구적 관점에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독일의 의제화 논의 과정에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요? 여전히 돌봄노동을 가정의 영역에 한정시키는 한국 사회에서, 탈성장에 입각한 돌봄 정치 의제화의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하지만 공적 돌봄이 부재한 사회의 '위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탈성장을 추구하는 공적 돌봄을 정치적 차원에서 의제화하고,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만이 '위험'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