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별은 배제하고 가사노동 분담하기
•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분담, 그러나 현실은?
• 불평등한 결과 정당화하기

성별 중립적 분담에도 계속되는 가사노동 불평등

성별은 배제하고 가사노동 분담하기

저자는 총 32쌍의 부부를 인터뷰했는데요, 이들은 모두 전통적 성 역할 규범을 거부하고 젠더 평등한 가치를 지향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성별은 배제하고 공평하게 절반씩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완벽하게 공평한 분담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아내가 더 많은 가사노동을 담당했고, 응답자들 역시 이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가사노동을 분담했을까요? 가사노동 분담에서 성별은 고려할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1) 가사노동 분담의 효율성과 2) 어떤 업무가 누구에게 더 잘 맞는가?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였죠. 응답자들은 성 평등한 분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충족될 때 가장 이상적인 분담이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 가사노동의 효율성: 분담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응답자들은 부부의 업무 시간, 직장 위치, 유연근무 가능 여부 등에 따라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예를 들어, 퇴근시간이 더 빠른 아내가 저녁식사를 담당하거나, 육아 휴직 중인 아내가 아이 픽업을 담당하는 것이었죠. 또한, 각자가 더 잘하는 것을 담당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한 응답자는 자신이 남편보다 인터넷 검색을 더 잘해서 그냥 가족여행과 관련한 예약을 모두 자기가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개인 본연의 성향 고려하기: 어떤 업무가 누구에게 더 잘 맞는가?

또 다른 분담의 기준은 개인 본연의 성향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과 배우자의 성격과 선호도에 기반하여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업무를 담당했죠. 한 응답자는 자신이 아이 옷장 정리를 담당하는 이유가 자신의 성격이 남편보다 더 꼼꼼해서 적합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특정 업무를 담당했을 뿐이지, 내가 ‘여자 또는 남자라서’ 그런 성향이 있다고 표현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내가 꼼꼼한 것이지, 내가 여자라서 꼼꼼하다고 설명하려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분담, 그러나 현실은?

앞서 본 것처럼, 이들의 가사노동 분담 과정에 성별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효율성과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서 분담이 이루어졌죠. 그러나 저자는 이들의 응답에서 몇 가지 모순을 지적합니다.

• 알고 보면 더 비효율적인 방식

한 응답자는 자신의 남편이 계획을 세울 때 매번 자신에게 일정을 체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응답자인 아내는 남편이 원래 자주 까먹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이들의 주장대로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거실에 달력을 두어 일정을 적어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응답자는 남편의 성향이라 어쩔 수 없다며 이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죠.

•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의 성향?

개인적인 성향을 강조했던 응답자들, 그러나 여기에도 모순이 있었습니다. 한 응답자는 자신의 외과의사 남편이 전구 하나를 교체하러 가기까지 엄청 오래 걸릴 정도로 느긋한 성격을 가졌다고 지적하면서도, 집에서만 그렇고 일터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매니저(PM)라는 직업을 가진 다른 응답자 또한 자신은 회사에서는 안 그렇지만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강조했던 것은 ‘집에 있을 때만’ 해당되었던 것이죠.

•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에 따른 차이

저자는 동일한 상황에서 남편과 아내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성별에 따른 차이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덜 버는 상황에서, 아내는 당연히 자신이 더 많은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반면, 반대의 경우인 남편이 아내보다 돈을 적게 버는 경우, 아내는 집에 있을 때 자신이 가사노동을 하여 조금이라도 남편을 쉴 수 있게 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즉, 같은 상황에서 성별에 따라 가사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것이죠. 

• 젠더 불평등한 결과를 자연히 주어진 상황으로 인식하기

또 하나 간과되고 있는 점이 있었습니다. 젠더 불평등에 의해 발생된 결과들을 응답자들은 그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 남편은 자신도 아이를 돌보지만 자신의 아내가 육아에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설명하며 여성이 육아에 더 능숙한 것은 어쩔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자신의 직장과 달리 아내의 직장은 유연근무를 허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내가 가사노동의 좀 더 많은 부분을 맡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상황들은 어쩔 수 없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육아를 위해 독서를 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등 관련 지식 습득을 위한 노력을 아내가 더 많이 한 것이죠. 또한, 아내가 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내가 남편에 맞추어 직장을 옮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름 뒤에 젠더 불평등이 숨어 있었던 것이죠.

불평등한 결과 정당화하기

그렇다면 자신들의 분담 방식이 의도치 않게 전통적 성 역할 규범과 유사한, 즉, 여성이 더 많은 부담을 떠안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응답자들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요? 응답자 대부분은 이를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이해했습니다. 분담하는 과정에서 성별을 고려한 의식적인 과정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즉, 젠더적인 측면에서서 중립적인 ‘과정’과 불평등한 ‘결과’를 분리해서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전통적 성 역할 규범과 비슷한 형태의 분담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일 뿐,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정당화했습니다.

📌 그럼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