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버리 레터는? 

여러분은 ‘성별 직종분리’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성별 직종분리는 ‘직종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현상’인데요. 폴리버리의 첫 번째 레터에서 한국의 성별 직종분리 현황을 알아보고 성별 직종분리의 원인에 대한 대표적인 주장을 비판적으로 살펴본 적이 있어요. 그럼 폴리버리는 왜 다시 이 주제를 들고 왔을까요?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성별 직종분리에서 크게 기인한다>는 주장은 최근 학계 바깥에서도 종종 통용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남성들은 돈을 많이 주는 직종에, 여성들은 돈을 적게 주는 직종에 주로 종사해서 성별 임금격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에 따르면, 직종 간 임금의 차이(=성별 직종분리에 의한 임금격차)와 같은 직종 내 임금의 차이 중 과연 어느 쪽이 성별 임금격차의 주된 요인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한 연구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이 문제를 검토했어요. 이번 레터에서는 이 연구의 주요 결과를 소개합니다.

•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의 상당 부분은 남성들이 보통 돈을 많이 주는 직종에서 일하고 여성은 그렇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직종 안에서 인적자본에 따라서도 설명되지 않는 성별 승진격차가 존재합니다. 즉, 한국에서 유리천장이 존재하며, 이것이 임금격차에 꽤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 이런 결과를 토대로, 저자들은 한국에서의 성별 임금격차를 개선하기 위해서 개인 수준의 인적자본 개선을 넘어서 조직, 산업, 또는 사회 수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 다만 본 연구에서는 임금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설문조사로 파악하기 어려운 요인들을 고려하지는 못했는데요. 예를 들면, 구체적인 출신 대학이나 위계적 조직문화에 적합한 성격 등이 여성과 남성의 승진 및 임금 수준에 차이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를 제대로 이해하고, 증거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연구들이 앞으로 더 많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들은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다 불현듯 ‘아, 화장지 다 떨어졌는데’, ‘파스타를 만들어야 하는데 마늘이 없네’ 같은 생각이 떠오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는 주로 어떻게 하시나요? 

냉장고에 있는 재료의 소비기한을 기억하고, 그에 맞춰서 식사 계획을 세우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가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의 종류, 병원 스케줄, 학원 스케줄 등을 총체적으로 관리해야 하죠. 이처럼 가사/육아의 모든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도록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요. 특히 갑작스레 어떤 필요(need)가 떠오르면 일상의 흐름을 깨기 쉽기도 한데요.

지금까지 사회과학 연구에 활용된 설문조사들은 사람들이 가사노동 혹은 육아와 관련된 ‘신체적’ 활동에 얼마나 시간을 소요하는지를 주로 측정해왔어요. 설거지, 목욕 시키기, 요리하기, 장보기 등의 일 말이에요. 하지만 최근 한 연구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가사 노동을 가사노동의 인지적(cognitive) 차원이라고 명명하고, 가정 내에서의 젠더 불평등을 연구하는 이들이 이에 더 진지하게 주목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이 주장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 연구자는 미국의 보스턴 지역에 거주하는 동거 커플 35쌍을 인터뷰하여 가사노동의 인지적 측면에 해당하는 네 가지 활동을 찾아냈어요. (1) 필요를 예상하기(anticipation), (2)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방안을 추려내기(identification), (3) 방안을 결정하기(decision making), 그리고 (4) 결과를 살피기(monitoring), 이렇게 네 가지였는데요. 

•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필요를 예상하기(1), 그리고 결과를 살피기(4)는 주로 여성들이 하고 있었던 반면, 방안을 결정하기(3)는 대체로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1), (4)의 활동은 특히나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이어서 그 일을 수행하는 여성들 자신도 본인이 노동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저자는 결정을 내리는 일(3)은 가사에 가장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활동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가사노동의 인지적 측면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수행되는 점 또한 가정 내 권력의 불평등에 기여하는 또 다른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에요.

• 가사 분담의 성별 격차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연구가 이미 진행되어 왔습니다. 저자는 가사노동의 인지적 측면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가사 분담에서의 젠더 불평등이 실제보다 적게 측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지적 차원의 가사노동이 제대로 분담되지 않을 때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 관계의 질 악화, 심지어는 노동시장 성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말이에요. 

• 문제는 기존에 성별에 따른 가사 노동을 측정하던 방식이 주로 시간을 측정해왔다는 건데요. 가사노동의 인지적 차원은 이런 방법으로 측정하기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측정 도구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도구로서 특정 활동이 초래하는 방해의 정도나 권력 발휘와 연관되는 정도 등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