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라는 말에 은밀히 감춰진 우리의 불편

 한국 사회에서 월경은 오랫동안 사적인 문제로 취급돼 왔어요. 집이나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만 은밀히 공유되는 경험이었고,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기는 쉽지 않았죠. 하지만 인구 절반이 겪는 월경은 단순히 개인의 컨디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요? 여성의 월경에 대한 경험은 노동, 교육, 복지, 건강권과 연결되는 문제이고, 더 나아가 평등과 존엄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요.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월경권’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죠. 이는 모든 여성이 월경 중에도 건강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월경권은 아직도 애매한 자리에 놓여 있어요. 법에는 생리휴가라는 제도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쓰지 못하고 있고, 정부나 지자체가 추진한 생리대 지원 정책도 일부에만 해당돼요. 국제적으로 월경을 기본권으로 보는 흐름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 셈이에요.

 때문에 국내에서 월경권에 대한 연구나 논의가 이제 막 활발해지기 시작했어요. 오늘 뉴스레터에서 한국의 월경권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김영경(2024), Pooja(2025, 석사학위논문) 연구를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출처: 외국은 ‘생리휴가’가 없다? “아프면 누구나 쉴 수 있으니까!”(한계레, 2021)

한국 여성들, 한 달에 한 번 “꿀 빨” 권리?

 생리휴가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졌어요. 당시에는 여성 노동자를 ‘모성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생긴 제도였죠. 하지만 처음부터 노동권이나 건강권을 보장하는 장치라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성별 분업 체제를 강화하는 제도로 작동했어요. “여성의 몸은 취약하기 때문에 법이 휴가를 보장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생리휴가가 생겨났어요. 여성은 언제든 결근할 수 있는 잠재적 인력으로 낙인찍히고, 기업은 생리휴가를 비용으로 인식하며 여성 채용을 꺼리기도 했어요. 제도가 있었지만, 여성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던 셈이에요. 이후 생리휴가 제도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어요. 1997년 근로기준법 전면 개정에서도 조항은 살아남았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2003년에 있었어요. 생리휴가는 법에 남았지만 무급으로 바뀌었어요. 청구권은 보장했지만, 그만큼 임금이 깎이니까 사실상 쓰기 어려운 권리가 돼버렸죠. “있지만 못 쓰는 권리”가 된 거예요. 오늘날까지도 생리휴가는 법에만 있고, 현장에서는 쓰기 힘든 제도로 남아 있어요.

 현장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줘요. 김영경(2024)의 석사학위 논문은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휴가 경험을 질적으로 추적했죠. 정규직 대기업 여성들은 제도의 존재를 알고 있고, 일부는 실제로 사용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마저도 조직 문화와 관리자, 동료의 시선, 낙인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기는 쉽지 않아요. 인터뷰 결과, “휴가를 청구하면 눈치가 보인다”, “상사가 좋지 않게 본다”는 응답은 매우 흔하게 나타났어요. 한편, 비정규직이나 서비스 노동자들은 휴가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느껴요. 대체 인력이 없으니 누군가 비우면 동료가 바로 부담을 떠안게 되거든요. 결국 많은 여성들이 진통제를 먹거나 연차, 무급휴가로 생리휴가를 대신해요.

 이런 현실은 제도와 실제 이용 사이의 큰 간극을 보여줘요. 표면적으로는 여성이 스스로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와 기업의 비용 논리에 의해 억제되는 장치로 기능해요. 여성들은 쓰지 않으면 통증을 감내해야 하고, 쓰면 임금 손실과 낙인을 떠안아야 하죠. 그래서 경영계는 오래전부터 “여성 과보호 조항이 오히려 차별을 낳는다”는 주장을 펼쳐왔어요 반대로 여성운동은 건강권 차원에서 제도를 옹호했지만, 결국 무급화로 이어지면서 실효성이 크게 약화됐어요 정부마저도 일관되게 생리휴가를 ‘여성 과보호 조항’으로 지목했습니다. 여성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오히려 기업의 채용 차별을 부추긴다는 주장이었어요. 이후 생리휴가는 권리라기보다 혜택이나 특혜로 인식되는 경향을 강화하고 말았죠.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그것은 ‘특권을 요구하는 행동’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 된 것이에요. 생리휴가는 권리라기보다 특혜처럼 인식되고, 여성 스스로 권리를 요구하기조차 어렵게 실정이죠.

월경권을 특권이 아닌, 보편적 권리로!

📌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첫째, 생리용품의 보편적·존엄 기반 무상 접근을 국가 책무로 명시해요. 스코틀랜드처럼 지방정부와 교육기관에 “모든 사람이 충분한 생리용품을 쉽고 존엄하게 얻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법에 못박는 방식이 실효적이에요. 스코틀랜드 법은 지역 당국이 (1) 누구나 필요에 따라 무료로, (2) 쉽게, (3) 여러 종류 중 선택 가능하도록, (4) 존엄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하라고 규정하고, 정부 지침으로 구체 운영원칙(사생활 보호, 눈치·불편 최소화, 안내 의무)을 제시해요. 이런 구조를 한국형으로 이식하면 “신청서·증빙” 장벽 없이 곧바로 쓸 수 있어요. 이를 기반으로 생리대 무상공급을 보장해야 해요 “지역복지사업”을 넘어 국가책임으로 격상하는 것이죠.

• 둘째, 생리휴가의 ‘권리성 복원’이 필요해요. 현재 무급 구조는 오히려 사용 억제를 낳고 있죠. 이에 한국 연구는 “대상 확대·유급화·증빙 미요구·사생활 보호·제도 안내 의무”를 제안해요. 월경을 여성만의 문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여성= 인간 신체’라는 생각의 선상에서 보편적인 현상이자 권리의 필요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예컨대 스페인은 이러한 인식의 발전을 통해 사용자의 비용 전가를 방지하는 사회보장 재원 지급모형을 도입했어요. 그렇지만 실제 이용률은 낮았고(도입 첫 11개월 1,559건), 진단 요건·낙인·정보 부족이 억제 요인이었어요. 한국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의학적 진단서 상시 제출을 요구하지 않고, 상사에게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게 바꾸는 거예요. 또, 얼마나 직원들이 생리휴가를 사용했는지 모니터링하는 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실제로 얼마나 이용했는지, 만족도는 어떤지, 회사 내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직장 내 성평등 지표는 올라갔는지 등 등을 함께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하면 기업이 직원들의 휴가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어요.

• 끝으로 데이터·모니터링 체계를 법에 심어요. 공급 물량이 아니라 실제 접근성, 이용률, 결석·병가 변화, 낙인·만족도, 직장 성평등 지표까지 매년 공표해요. 뉴질랜드처럼 보건-교육-지방정부 연계 성과지표를 도입하고, 시범사업으로 정책효과를 투명하게 검증하면 논쟁(비용 vs. 효과)을 근거로 정리할 수 있을 거에요.

 생리휴가와 관련한 논의에서 한국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해요. 월경권을 여전히 보호와 혜택의 언어에 묶어둘 건가요, 아니면 여성이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 다시 쓸 건가요?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케냐, 인도의 경험은 모두 다른 조건 속에서도 월경을 권리로 확장하려는 시도들이에요. 한국 역시 생리휴가와 생리대 지원을 넘어, 월경을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