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출생률 OECD 꼴찌,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매년 역대 최저 출생률을 기록하는 것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죠. 이에 대응하여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정책의 성과는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선택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정부의 출산장려정책, 이대로 괜찮을까요? 출산정책은 의도치 않게 여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출산이 사회적으로 강조될수록, 여성의 임신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어 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임신을 할 수 없는 불임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더 나아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위협까지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몸에 대한 제도적 개입은 개인의 정체성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총 3부작으로 진행되는 ‘여성의 몸’ 특집, 오늘은 지난 번에 이은 두번째 시리즈입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형성에 있어 몸의 역할을 강조한 미국의 한 연구를 소개해드릴게요.

그간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 둘의 몸과 신체적 기능은 한 눈에 딱 봐도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생물학적 설명은 젠더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매우 좋은 소재였습니다. 그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래서 연구자들에게 생물학적 설명은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져 왔습니다. 젠더는 오직 문화적 차원에서만 설명되어져야 했죠.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관습 때문에 ‘몸(Body)’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몸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몸 역시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으로 구성됩니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구성된 몸은 더 나아가 개인의 젠더 정체성의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즉,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은 문화적 상호작용 뿐 아니라 몸을 통해서도 구성되는 것이죠. 이러한 몸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미국의 불임 여성 58명을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신의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요즘은 삶의 방식이 다양해져서, 굳이 임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것 같은데…놀랍게도 인터뷰에 응답한 불임 여성 대부분이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음의 방식으로 몸에 대해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형성 및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지난번 레터에서도 강조되었듯이, 여성의 몸은 과도하게 이상화(Idealization)되어 있습니다. 여성스러운 외모, 임신 가능한 몸처럼 말이죠. 이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점점 더 위협받게 됩니다. 위태로워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죠. 특히, 불임은 여성의 젠더 정체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여성에게 임신은 단순히 재생산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정체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몸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을 줄일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 인식적 개선 뿐 아니라, 젠더 평등한 정책과 의료기술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불임/난임 치료는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난임을 구성하는 원인의 절반이 남성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역할로 여겨져 온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여전히 많은 난임시술의 대상이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자체가 젠더 불평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오로지 여성의 몸에 대해서만 정치적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는 저출생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여 궁극적으로 여성의 억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젠더 평등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