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대남, 이대녀라는 말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죠?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서 청년 세대를 이야기할 때 젠더갈등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화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젠더갈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페미니즘인데요. 국내에서는 특히 페미니즘이 매우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로 다뤄져 왔습니다. 그렇다보니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페미니즘 댓글 논쟁이 종종 이슈가 되었던 적도 있었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든 젠더갈등이 페미니스트 vs. 안티페미니스트 구도로 단순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립 구도에서, 마치 청년 남성은 모두 안티페미니스트인 것처럼 정리되고 있죠. 그런데 젠더갈등을 단순히 ‘여성 페미니스트 vs. 남성 안티페미니스트’ 구도로 볼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청년 남성들의 젠더 인식을 단순히 ‘안티페미니스트’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국내 연구자에 따르면, 청년 남성의 젠더인식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형성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젠더 인식 다층성을 안티페미니즘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죠. 이번 레터에서는 청년 남성들이 다양한 삶의 단계에서 어떻게 그들의 젠더 인식을 확립해 나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젠더갈등을 해결하려면 우선 남성들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청년세대의 젠더갈등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많이 설명되어지는 것이 ‘공정성에 대한 열망’입니다. 불안정, 저성장 시대에 신자유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기 때문에, 남성들은 성평등 정책이 공정성을 해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는 거죠.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은 남성의 경쟁 대상이기에 여성 정책은 공정한 규칙을 깨는 불공정 행위이자, 역차별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기존의 주된 설명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청년세대의 젠더갈등을 그저 삶의 불안정성이나 경쟁 심화의 결과로만 설명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젠더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 남성성의 해체와 그것을 대체할 대안적 남성성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더 이상 같은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남성은 대안적 남성성을 형성하는 대신 피해자로서의 남성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청년 남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 변화에 발맞춘 대안적 남성성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젠더인식이 다양한 삶의 조건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죠.

💡 “이미 성평등 해! 정책은 폭력피해, 경력단절 여성 지원정도면 충분해”, 같음지향형 (47.7%)

첫번째 유형인 ‘같음지향형’의 남성들은 현재 사회는 충분히 성평등하다고 믿고 있었어요. 따라서 이들은 성평등 정책에 대체로 부정적이었죠. 그렇지만 일부 여성 정책, 예를 들어 현존하는 여성 폭력이나 경력단절을 위한 정책 확대에는 우호적이었으며, 여성도 능력에 따라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유형은 청소년기에 부모님으로부터 강한 학업성취 압박을 받은 경험이 있는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능력주의를 가장 강하게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죠. 특히 이 유형이 경험한 학업성취 압박은 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전업주부 엄마의 영향이 컸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왜 그렇게 학업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분노가 엄마와 여성 집단 일반으로 향하게 되고, 전업주부인 엄마는 소위 ‘꿀빠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거죠. 이러한 성장배경때문에 이들은 여성을 적대적으로만 보지 않는 동시에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피해의식을 비난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 “여성은 보호의 대상, 그렇지만 전통적 성역할 규범에 동의하는 것은 아냐”, 보수형 (20.8%)

‘보수형’ 남성들은 여성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보호가 필요한 온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남녀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성별직종분리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이 남성들은 어린시절 대부분 아버지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고, 성인기에는 남성이 많은 육체노동 작업장에 종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폭력은 남성성이라는 인식과 남성만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생득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 할지라도, 이들이 바깥 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고 여기는 전통적 성역할 규범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단지 같은 직장 내에서 성별에 따른 직무 분리는 당연한 것이라고만 생각할 뿐, 전통적 성역할 규범을 지지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거죠.

💡 “성평등 정책은 찬성, 일상생활에서는…글쎄?”, 평등당위수용형 (17.2%)

‘평등당위수용형’ 남성들은 모든 성평등 정책 확대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아내를 대신해 육아휴직을 사용한다거나 가사 및 돌봄에 참여하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성평등 활동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어요. 즉, 인식과 실천의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었죠. ‘평등당위수용형’은 10대시절 남성 사회로부터 배제 경험과 학업성취에 대한 열망, 이 두 가지 경험이 공존할 때 형성되는 젠더인식 유형이었습니다. 배제의 경험이 소수자 인권 보장에 대한 감각을 활성화 시켜 성평등 정책에는 크게 반감을 보이지 않았던 반면, 젠더 인식이 실천의 영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죠.

💡 “젠더 불평등은 실재해, 그러니 여성 지원정책은 필수!”, 변혁지향형 (14.2%)

마지막 유형인 ‘변혁지향형’은 현행 젠더 관계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당연히 여성 지원정책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즉 4가지 유형 중 페미니즘에 가장 긍정적인 유형이었죠. ‘평등당위수용형’과 마찬가지로, ‘변혁지향형’ 남성들 역시 청소년기에 학교 폭력 경험이 있거나 남성 주류문화에 편입되지 못한 경험을 했어요. 그럼에도 ‘변혁지향형’ 남성들이 더 적극적인 실천적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는 건강한 가족과의 정서적 관계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성취에 대한 압력도 주지 않고 늘 긍정적인 독려와 지지를 주신 경우, 자신이 경험한 폭력이 남성 과시적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식하게 만들고 건강한 젠더관계를 확립하게 한 것이죠.

• 앞서 살펴보았듯이, 청년 남성들의 젠더인식은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어떤 집단이든 간에 여성에게 적대적이기만 한 남성은 없었고, 성평등 정책 수용 가능 범위나 전통적 성역할 규범에 대한 태도 측면 등에서도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청년남성을 마치 한 집단의 안티페미니스트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저자는 특히 오늘날의 페미니즘 또는 안티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디지털 공간을 통해 편향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현재의 청년 남성 안티페미니스트 전형은 같음지향형, 보수형, 평등당위수용형 이 세 집단의 각 부정적 속성이 조합된 형태입니다. 가장 여성에게 적대적인 집단이라는 것은 없으며, 그저 각각의 유형이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을 뿐이죠. 비록 연구에서는 이들은 4개의 유형으로 분류했지만, 우리는 청년 남성들을 바라봄에 있어 더 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안티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온라인 공간에서 왜곡되어 제한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이제 언론은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중심의 세대 프레임으로 청년 남성의 젠더 인식을 설명하는 것을 지양해야겠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젠더인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다른 요소들을 비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청년 남성의 젠더인식은 그들의 구체적인 생애과정, 예를 들어 가족 친밀성, 또래 문화, 노동과정 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이나 직장 괴롭힘 등의 경험이 남성들의 젠더인식 확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또한, 동일한 남성 동성으로부터의 폭력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응답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남성됨의 문제로서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는 일상생활에서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 또는 친밀한 여성과의 교류 여부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되었죠. 따라서 생애과정의 경험들이 젠더인식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이러한 경험들을 젠더화 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