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
• 보이지 않는 노동이 단지 여성만의 불편부당이 아닌 이유

직장에서도 돈 받지 않고 하는 노동이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공식적인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 암묵적 또는 직접적으로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노동 일체를 뜻합니다. 조직의 문화나 부서별 특성에 따라 그 노동 수준이나 범위는 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조직은 찾기 힘들 겁니다. 어떤 특별한 성과는 내지 않지만, 조직이 수월하게 운영되는 데 이러한 노동이 알게 모르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 내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그러한 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예요. 이것의 부담과 분배가 우리 사회와 조직 내 성차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죠. 이번에 소개할 논문의 저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네 가지로 유형화하고, 그 중 세 가지 유형에 있어서 성차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유형과 성차별의 양상을 아래의 표로 정리해보았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

직장에서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더 많이 하고, 그러한 노동을 업무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자는 인터뷰와 통계 분석 결과를 통해 각 유형 별 그 내용과 이유를 알아봤어요.

먼저 ‘보이지 않는 협력 업무’의 경우,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자주 이 유형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사회문화적 기제가 작동한 까닭으로 봤습니다. 동료의 생일 선물을 챙기거나, 팀 회식 메뉴를 정하는 일은 '여성이 더 잘하는 일'로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인식하는 거예요. 돌봄과 공감을 '여자다움'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속성을 띈 협력 업무를 마땅한 보상 없이 여성 직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죠. 이는 여성 노동자의 능력을 저평가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내용을 가진 협력 업무 자체의 노동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보이지 않는 육체 돌봄 노동’은 남녀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하고 있었지만, 여성이 상대적으로 이를 업무의 일부라고 인식하는 태도가 강했죠. 인터뷰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주로 커피 타기나, 휴지통 비우기, 설거지 하기 등과 같은 일을 자신들이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육체 노동을 집에서도 본인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이같은 노동을 당연스레 수행하거나, 혹은 가정 내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팀원들로부터 당연한 기대를 받으며 마지못해 수행하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조직 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보이지 않는 감정 노동’을 더 많이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노동을 업무의 일부라고 여기는 인식도 더 컸습니다. ‘보이지 않는 협력 업무’와 유사하게 포용적이고 공감하는 여성의 전형이 조직 내 여성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에요. 인터뷰에서도 남녀의 경험 차이가 두드러졌는데요. 여성의 경우 회사에서 '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직업 특성과 상관없이 동료들과 '부드럽게' 대화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기도 했어요. 개인적인 조언이나 도움 요청을 무시하면 일상적인 조직 생활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어요. 반면에 남성은 후배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을 '멘토 업무'로써 조직에 대한 헌신의 일종이자 가시적인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단지 여성만의 불편부당이 아닌 이유

연구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노동’은 여성만 차별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리거나, 학력 수준이 낮거나,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이어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차별적으로 부담하고 있었어요. 즉, 보이지 않는 노동의 분배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 요인들을 그대로 반영해 불평등을 지속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연령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졌어요. ‘보이지 않는 감정 노동'을 제외한 세 가지 유형 모두에서 유의미한 경험 차이를 보였습니다. 조직 내에서 어릴수록 '막내이니까'라는 명목으로 공식 업무 외의 일을 강요당하거나 스스로 '내가 해야할 일'이라 여기며 보이지도, 보상 받지도 못하는 노동을 더 다양하고, 더 많이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노동을 업무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실제 가정에서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결과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는 실제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하는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더 자연스레 수행하고 있던 결과와도 연결되는 한편, 직장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결국 가정의 비임금 가사 노동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배경에는 임금, 기술, 일, 그 반대의 무급, 비숙련, 가정 생활의 경계가 전자는 남성의 것(혹은 남성성), 후자는 여성의 것(혹은 여성성)으로서 지어지고 있는 사회 구조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포함해 사회적 지위가 불안한 모든 이(청년, 비정규직, 저학력 등)가 보이지 않는 노동의 부당한 분배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 그럼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