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제’는 ‘남자 대 여자’의 문제가 아니야

“그 땐 그랬지~” 국가안보=경제발전, 군사력이 곧 노동력

제대군인의 노동시장 우선권을 보장한 우리나라 군가산점제는 1961년 7월 첫 도입되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국가에게는 2가지 시급한 과제가 있었는데요, 바로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이었습니다. 냉전이라는 고조된 이념대립의 상황속에서 안보는 절대적이었고, 한국전쟁 직후였기에 국가의 재건 역시 중요했죠. 이 2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가 바로 징병제와 군가산점제였습니다. 당시 성역할 규범에 따라 정무는 남성에게만 의무복무를 부과하는 징병제를 운영했는데요, 정부는 이를 통해군사력을 확보하고, 군가산점제는 군에 동원되어야 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체계로서 역할을 했죠. 또한 경제발전을 위해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해야 했던 상황에서 군가산점제는 제대군인을 노동시장으로 연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군 제대한 남성만이 진정한 남성이라는 헤게모니 남성성이 적극 형성되었고 국가는 이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해 나갔죠.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사회적 분위기는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국가의 최우선 목표는 안보와 경제발전에서 자유와 평등으로 옮겨갔죠. 민주사회가 약속한 평등이라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군가산점제는 1999년 대법원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제 여성도 노동시장의 정식 구성원이 된 상황에서 군가산점제는 성평등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군복무의 유일한 보상 체계였던 군가산점제가 폐지되어버렸으니 남성들의 반발은 당연했습니다. 스스로를 역차별 피해자로 담론화하여 군가산점제를 재도입하거나 여성에게도 똑같이 의무를 부과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거죠.

젠더갈등은 변명일 뿐, 협상 타겟은 따로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민주화 이후 폐지된 군가산점제와 이에 따른 젠더갈등이 오히려 징병제의 균열을 봉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저자가 강조하는 군가산점제의 핵심은 성평등이 아니라 국가와 헤게모니적 남성 간의 유대입니다. 전통적 남성성이 무너지고 징집의 명분이 없어진 상황에서 징병제를 지속하려면 유일한 보상체계인 군가산점제를 재도입하는 게 국가입장에선 가장 효율적이지만, 성평등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용인되기 어렵죠. 그런데 만약 젠더갈등을 빌미로 역차별로서 접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쉽게 말해 군복무에 반발하는 남성들의 타겟을 징병제의 폐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고 군가산점제 재도입을 위한 명분을 만드는 겁니다. 저자는 군가산점제의 재도입 추진이 성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헤게모니적 남성과의 연대를 재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여성가족부는 군가산점제 대체 방안으로 군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의 정책을 제안해왔죠.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와 남성과의 문제였던 것이 성평등을 빌미로 여성가족부에게 떠 넘겨졌으며, 군가산점제 폐지에 따른 젠더갈등이 군인들의 처우 개선을 가져온 것입니다.

또 하나, 저자는 군가산점제가 남성 대 여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성 내에서의 차별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정부는 군을 정예화하고 더 많은 남성들을 군에 편입하기 위해 대체복무제(현 사회복무제도)를 운영해왔습니다. 현역복무자만 헤게모니 남성으로 의미화하고 군 가산점 혜택을 제공해온 군가산점제는 현역복무자와 그렇지 못한 남성들 간의 위계를 형성하고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왔죠. 군가산점제 재도입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사이의 성평등 문제로서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명확해보이네요.

📌군가산점제와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살펴봤듯이 군가산점제는 단순히 ‘남성 대 여성’의 구도의 성평등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 내에서의 위계와 차별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만약 군가산점제를 젠더갈등 문제로 치환해버리면 남성 내 대체복무자에 대한 차별은 간과되고 현역복무자인 헤게모니적 남성과 국가의 연대를 재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징병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차라리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을 제공하거나, 군인 처우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일지도 모릅니다.

•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남성에게만 의무가 부과되는 상황에서 최소한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도 군대에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남성과 같음을 기준으로 성평등을 정의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는 국가안보 영역이 사회 내 다른 영역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서사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안보 외에도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를 필요가 있는 현재에 걸맞지 않은 방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과거와 달리 현재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징병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해 보입니다. 징병제가 필요한지, 제도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누가 가야하며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한 절차와 제도를 세우기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