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자)애들의 조기퇴사 이유

??: “기업이 군대는 아니지만 군대 같을 필요는 있지 않겠어?”

💡 사무실에서 군인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기업들

모든 인터뷰 대상자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군대 수준에 맞먹는 복종을 요구했다고 회상합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대게 대규모 공채를 통해서 신입 사원을 뽑습니다. 그리고 채용이 된 이들은 몇주간의 트레이닝 캠프에 참여하도록 되어있죠. 인터뷰 대상자들은 이 트레이닝 캠프에서부터 군인 같은 노동자로 탈바꿈시키는 훈련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그와 무관한 단체 체력 훈련이나 춤추고 노래하기, 산행 등을 통해 기업에 대한 소속감을 키우고 집단 행동에 익숙해지도록 개조하는 과정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체 훈련 과정은 상대적으로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들에겐 익숙한 반면, 청년 여성 대부분은 이런 훈련 자체와 그런 집단적이고 위계적인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음을 토로했습니다.

자, 이제 그런 훈련 과정을 거쳐 회사에 들어가면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상사로부터 무조건적인 복종 요구와 욕설 또는 심하면 물리적 폭력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나까’로 문장의 끝을 맺는 군대식 말투를 사용하도록 하기도 하고요. 이런 폭압적 문화도 군대를 다녀온 청년 남성들에게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물론 견디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지만요. 반면 여성들은 낯설음과 함께 성폭력/성희롱의 경험이 가중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인터뷰한 29명의 여성 중 20명이 퇴사한 직장에서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겪었다고 증언했어요. 그러나 이들 중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없었는데요.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문제를 제기했을 때 피해 여성 직원이 제대로 구제 받는 걸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피해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가해 남성은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경우를 목격하면서, 회사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처리해줄 거라는 믿음이 부재한 상태였습니다. 

💡 여자는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비공식 네트워크

한편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회사 내에는 여자라서 낄 수 없는 남자들만의 네트워크가 존재했다고 회상합니다. 술, 담배, 그리고 성매매라는 키워드로 설명되는 네트워크죠. 근무 중 담배 한 대 피우러 가는 남자들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하죠. 담배를 피면서 별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근무 중에 가짐으로써 그들만의 친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퇴근 후 술 한잔 하는 문화에서도 여성은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니까 배려해서, 혹은 여자 접대원이 나오는 술집을 가기 위해서 여성 직원들은 술자리 네트워크에도 완전히 소속될 수 없었어요. 

한 여성 면담자는 늘 남자 동기로부터 자신에 대한 상사의 평가를 전달받아야 했다고 회상합니다. 즉, 이런 비공식 네트워크 안에서 남성 직원들은 좀더 캐주얼하게 상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누린 반면, 여성 직원들은 그런 피드백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이런 비공식 네트워크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인터뷰한 남녀 모두 이런 비공식 네트워크가 업무 성과를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 회사 그리고 상사와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

예전부터 한국은 장시간 노동환경으로 유명했죠. 그리고 이 장시간 노동에 대한 기대는 관습적으로 젠더화되어 있었습니다. 집에 보필해줄 엄마 혹은 아내가 있는 남자만이 긴 노동 시간을 감당할 수있는 존재로 여겨져 왔고,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가서 다시 집안일을 해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가 온전히 동원할 수 있는 노동자는 아니라고 여겨져 온 것이죠. 연구 결과, 현재까지도 장시간 노동의 미덕, 그리고 그런 노동에 이상적인 존재로서 남성은 여전히 유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면담자들 대부분은 출근시간보다 일찍 가고, 퇴근시간보다 늦게 떠나야 했던 조직 경험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장시간 노동(overwork’)보다는 ‘장시간 머무름(overstay)’에 가까웠는데, 일을 마치고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먼저 퇴근하지 못하는 수직적 문화가 작동한 까닭입니다. 심지어 시간외 근무를 결재 올리지 못해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근무가 끝나고는 회식 자리가 이어졌고 술을 억지로 많이 먹어도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하는 경험들도 드러났어요. 

이때 여성들은 그런 근무 환경을 보고, 경험하며 앞으로 결혼과 임신을 할 여성으로서 회사에 오래 남아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게다가 회사에는 참고할만한 여성 롤모델도 찾기 힘들었고,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고 떠나는 여성 상사들을 목격하곤 했답니다. 그 결과 어차피 떠나게 될 바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지속 가능한 직업을 다시 찾아겠다는 생각이 조기 퇴사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럼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저자는 ‘군대화된 일자리’가 한국 군대 문화가 군대 조직을 넘어서 기업과 사회의 문화 및 규범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청년 모두에게 고통의 경험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고통의 수준이나 범위는 달랐지만요. 수직적 위계, 군인과 같은 남성성이 효율적인 것, 혹은 우월한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계속 자리를 잡고 있다면 그 사회에 속한 기업도, 사람들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그런 차원에서 군 제도, 남성성, 위계적 기업 문화 등을 연결하여 논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 ‘군대화된 일자리’ 경험의 고통이 청년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면서, 이들의 조기퇴사도 더 많아지고 있음을 저자는 우려합니다. 이들의 조기퇴사가 기업 내 여성의 수적 열위를 지속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서 보았듯이 수적 열위는 단순히 여성의 대표성 문제에 한하지 않습니다. 참고할 롤 모델의 부재, 조직 내 네트워크의 성별 불균형 문제 등을 동반하죠. 따라서 현재의 여성 노동정책이 미혼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고충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수의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세련화의 노력도 동반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