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렇게 예민해~ 너 갱년기야?

#폐경/완경 #헤게모니여성성 #교차성 #젠더화된조직

2023. 10. 22.

💌왜 이렇게 예민해~ 너 갱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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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와 함께 발행합니다. 여성과 일, 그리고 더 나은 노동시장을 위한 고민을 담은 논문들을 달마다 키워드로 묶어 전해드려요.
폴리버리 레터는 매 달 두번째, 네번째 월요일 오전 8시에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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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폐경/완경 #헤게모니여성성 #교차성 #젠더화된조직

젠더화 된 조직, 그리고 ‘더럽혀진’ 여성성
내 폐경이 어때서~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너 갱년기야?

갱년기 여성이라고 하면 혹시 히스테릭한 중년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나요? 폐경 (또는 완경)은 나이가 들어 여성의 생리가 완전히 멈추는 현상으로, 때가 되면 당연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반응입니다. 보통 폐경기의 여성들은 여성호르몬 분비에 급격한 감소를 겪게 되어 피부질환 등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거나, 감정이 예민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죠. (* 최근에는'폐경'의 부정적인 어감때문에 '완경'이라는 용어를 지향하는 추세이지만, 공식 등재된 의학용어에 맞춰 이번 레터에서는 '폐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폐경은 단순히 생리학적 이유로 신체적, 감정적 증상이 동반되는 병리학적 현상만이 아니예요. 폐경은 헤게모니 여성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이들로 하여금 정체성의 상실감을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 노동자로서의 위기감까지 느껴지게 하죠. 아니, 폐경하는 거랑 회사에서 일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오늘 폴리버리는 폐경과 관련하여 해외의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합니다. 바로 직장에서 남몰래 고군분투하는 폐경기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들의 생생한 폐경기 경험을 한번 들어보죠.

젠더화 된 조직, 그리고 ‘더럽혀진’ 여성성

저자는 직장에 다니는 중년여성들의 폐경 경험을 ‘더럽혀진 여성성 (dirty femininity)’이라고 명명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우선 회사가 ‘젠더화 된 조직’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직장 내에서 보통 남성의 신체는 마치 성별이 없는, 보편적인 신체처럼 여겨지는 반면, 여성의 신체에는 여성이라는 성별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뜻이예요. 남자와 달리 여성에게만 화장, 머리 및 옷의 단정함, 하이힐을 요구하는 게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이처럼 직장은 어리고, 생기있고, 날씬한 여성이 이상적인 직장 여성인의 모습이라는 헤게모니 여성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곳입니다. 흔히 사회적으로 말해지는 ‘나이든 남자는 와인(🥂), 나이든 여자는 퇴물(👿)’ 이라는 말에도 헤게모니 여성성의 강요가 들어있는거죠. 이렇게 헤게모니 여성성이 굳건한 조직에서 폐경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하는 불건전한 것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직장 내에서 최대한 자신의 폐경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경험을 들어보니, 폐경은 4가지 차원에서 헤게모니 여성성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 신체적 차원 (Physically dirt)

- 보통은 완전한 폐경을 하기 전까지 1년여간 여러 신체적 증상이 동반되는 폐경 이행기를 거칩니다. 이 기간동안 참여자들은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시시때때로 갑자기 출혈을 하거나, 온 몸에 열이 올라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증상을 경험했는데, 이는 여성스러운 몸을 위협했죠.

💡 감정적 차원 (Emotionally dirt)

- 이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 때문에 폐경기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예민한 여성’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어요.

💡 도덕적 차원 (Morally dirt)

- 참여자들은 폐경으로 인해 여성성을 상실했다는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를 더 갖고 싶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왜냐하면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이상적인 직장인으로서 헤게모니 여성성을 수행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여성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화장하고 꾸미는데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 사회적 차원 (Socially dirt)

- 폐경이 헤게모니 여성성을 더럽힌다는 것은 폐경에 대한 조직 내에서의 시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폐경은 회사에서는 말하면 안 될 불편한 주제로 취급되었고, 상사의 의견을 반박이라도 하면 “뭐야, 왜 이렇게 예민해. 너 생리 중이야? 아님 갱년기라서 그래?” 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폐경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죠. 폐경기 여성은 예민하고, 불편하고 경쟁력이 없다는 편견이 조직 내에서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폐경기 여성 직장인들이 ‘이중위험 (double jeopardy)’에 처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직장 내 헤게모니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해 폐경기 여성은 ‘젊음’과 ‘여성다움’ 유지에 대한 이중부담을 감내해야 하니까요. 젠더화 된 조직에서 여성은 헤게모니 여성성을 해치는 임신, 생리, 폐경과 같은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폐경이 어때서~

그래도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작은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소수지만 일부 인터뷰 참여자들은 직장에서 자신들의 폐경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태도를 보였거든요. 물론 여전히 상당수의 여성 및 남성 동료들이 충격을 받긴 했지만요. 한 참여자는 폐경은 그저 자연스러운 생리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이를 터부(taboo)시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폐경으로 인한 자신의 신체적 고충을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라면서요.

📌늦어지는 은퇴시기, 중년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동안 여성의 생리학적 현상은 이야기되어져서는 안 될 은밀한 사회적 금기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생리나 폐경 같은 것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서는 헤게모니 여성성이라는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어 왔습니다. 생리는 ‘어엿한 여성으로서 축하받아야 할 것’, 폐경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일상적인 삶을 더욱 은폐할 뿐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그저 자연스러운 생리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인식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네요.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동시장에서의 은퇴시기도 점점 늦어지고 있죠. 그만큼 노동시장에 중년여성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는데요. 건강한 노동자를 위한 복지 차원에서 여성의 폐경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폐경기 여성들은 신체적 증상 외에도 복합적인 심리적 과정을 경험한다는 걸 알았으니, 이들을 건강하게 케어 해줄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함께 동반되면 중년여성들도 건강하게 노동을 지속할 수 있을 겁니다. 조직이 남성을 일반적인 노동자로 상정하여 젠더화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중년여성 노동자들의 폐경에 대한 케어는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