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이고도 일반적인 ‘???’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들을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근면 성실함? 융통성? 창의성? 여러분들이 떠올리는 능력들은 사회통념적으로 남성과 여성 중 어떤 성별이 지닌 능력 같은가요? 미국의 사회학자 조안 애커(Joan Acker)는 일찍이 노동 시장에서 정의하는 ‘이상적이고도 일반적인 노동자(ideal-typical worker)’가 남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어요(Acker, 1990). 이것은 일상에서의 성차별 문제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때, 기업은 남녀 특정 성별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 통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죠. 그에 따르면, 성별 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남성의 신체와 남성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고, 이것은 부지불식간에 사회에 스며들어 있어 성차별을 유지 및 강화시킨다고 해요. 예를 들어, 이상적인 노동자는 자신의 일상 생활보다도 ‘일’을 우선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할 때, 많은 경우 집안 살림살이를 담당하고 자녀 출산 및 육아까지 해야 하는 여성은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노동자 이미지에서 배제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때 이야기되는 ‘노동자’에 대해 생각해볼 때, 어떤 직종들을 떠올리셨나요?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가게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점원?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떠올렸겠지만, 혹시 ‘예술가’도 함께 떠올리셨나요? 아마 그들을 떠올린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고, 설령 떠올렸다고 해도 처음부터 떠오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역시 ‘직업’의 일종으로서, ‘이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까요? 이번 레터에서는 이 질문에 답하는 논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이한 노동자, 예술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술가는 여타 보편적인 노동자로 치부되는 직군들과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사회적 통념은 예술가들이 오랜 기간 ‘노동자’에 관한 논의에서 제외되어 왔던 이유이기도 하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관료제 시스템에 속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일과시간 대부분을 예술 활동에 투자하는 전업 노동자도 아니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의 지위를 얻고자 예술계로 진입해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창의성까지 갖추었다고 여겨지는 사람조차, 예술가로서의 성공은 전혀 보장받지 못하죠. 성공하지 못했을 때, 임금도 당연히 생계를 꾸리기에 턱없이 부족하고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프리랜서로서 일을 하더라도 다른 직업을 겸해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술활동을 하더라도 직업이 아닌 취미 정도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아요. 오늘 소개할 논문의 저자는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똑같은 직업 종사자라고 하여도 ‘이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예술가’를 정의하는 기준은 보편적인 노동자와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예술가 = 남성 예술가?

예술가는 여타 노동자와 다른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지만, 가장 이상적이고,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예술가의 이미지는 일반적 노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성성’을 반영한 이미지라고 합니다. 예술가의 전형을 나타내는 상징은 많은 경우 남성으로 대표되는 상징이라는 것이죠. 그러한 양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 창의적인 천재? 아마도 그 사람은 남성?

💡 남성이기에 오를 수 있는 ‘유리 런웨이’

어떤 예술 작품이 뛰어난 예술 작품일까요? 예술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나요? 예술 분야에서 훌륭한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른 학문 분야나 노동 분야에 비해 불분명하고 모호해요. 그래서 예술계의 사람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관행’을 도입합니다. 예술 비평 담론 이론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이 전형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기준 역시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의 주관을 온전히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성별’과 같은 가시적이고 직관적인 기준을 도입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이 부지불식간에 도입될 때, 여성 예술가는 남성 예술가보다 덜 유능하고, 예술가로서의 권위를 갖추기 못한 존재로 인식됩니다. 동일한 질의 그림, 글, 강의를 창작자의 성별만 다르게 하여 평가를 받았을 때, 남성의 창작물로서 제시된 경우에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 또한 있습니다. 조지 엘리엇(본명: 메리 앤 에반스, Mary Ann Evans), J.K. 롤링(본명: 조앤 캐이슬린 롤링, Joanne Kathleen Rowling)과 같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성별이 드러나지 않도록 남성적인 필명이나 이니셜을 사용했던 사례는 이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남성이 예술계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과정을 ‘유리 런웨이(the glass runway)’라고 규정한 연구도 있어요. 직장 내에서의 성별 불평등을 의미하는 ‘유리 천장’이라는 용어는 많이 알려진 개념인데, 이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위 직급으로 차근차근 승진하는 보편적인 직장과는 달리, 예술계와 같은 창의성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단순히 ‘위’로 올라가는 것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 주목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단어를 쓴 것인데요, 쉽게 말해 여성에 비해 남성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런웨이에 선 모델과 같이 더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요? 안타깝게도,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예술을 할 때,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그녀의 ‘성적 매력’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관객들이 예술가를 평가할 때, 여성 예술가들의 예술적 능력과 신체적 매력은 같이 가지 않는 개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여성 음악가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성공을 이루었을 때, 그녀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도구’로 사용했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공연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해당 여성 예술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합니다. 해당 요구를 거절할 시, 공연을 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고, 요구를 승낙해 공연을 해도, 성적 매력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가린 저평가된 공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남성에게 더 유리한 자기 선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안정적인 고용 상태에서 창작 활동을 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계약직, 혹은 프리랜서이며, 사회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훌륭함을 증명하고, 홍보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죠. 그리고 예술계에는 이러한 불안전한 지위의 예술가들을 성공의 길로 인도해줄 수 있는 ‘게이트키퍼’들이 있어요. 비평가, 음악회 및 전시회 담장자, 출판사 편집자 등이 게이트키퍼의 예시예요. 예술가들은 이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고 성공의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전 활동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는 성별은 남성이라고 해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홍보하고 자원을 요청하는 소위 ‘기업가 정신’은 남성일 때 더 바람직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여성의 이러한 활동은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고 해요. 

더불어, 이러한 예술계에서의 선전 활동은 ‘입소문’ 등에 기반한 비공식적 ‘네트워킹’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유리한 성별 또한 남성이예요. 네트워킹을 할 때, 개인의 자질 외에 우선시되는 기준은 ‘이 인맥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인데, 이때 혼인을 할 시 가정 내에서 출산 및 육아를 담당하게 될 여성은 상대적으로 네트워킹을 하기 부적절한 존재로 받아들여져요. 자연스럽고도 암묵적으로 남성화된 예술가가 적절한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실제로 여성 예술가들의 이례적 성공 사례들에서는 ‘여성으로서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경우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성이지만 자녀가 없어 자신의 꿈을 좇을 수 있었다’ 같은 점 말이예요.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다행히, 온전히 자신의 능력 및 출신 배경으로만 승부해야 했던 과거의 예술계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다양한 예술가 지원 정책들이 마련되어 있어요. 뛰어난 학생들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생계 유지를 도모하고 그들이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주거 및 활동 준비금을 지급하기도 해요. 앞서 설명하였듯, 자녀 돌봄은 예술인 개인이 예술 활동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예술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를 완화하기 위해 예술인 자녀 돌봄 서비스 역시 진행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사회 정책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별 불평등은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죠. 아직 이러한 정책들은 완벽한 상태라고 볼 수 없어요. 특히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의 자녀 중 24개월~10세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예술인 자녀돌봄 지원 서비스는 현재 대학로에 있는 ‘반디 돌봄센터’와 마포에 있는 ‘예봄 센터’ 두 곳에서만 진행되고 있어요. 지원 기관의 절대적인 개수도 적은 것은 물론, 서울 지역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자녀의 유무 및 자녀 돌봄 여부가 예술인 중 특히 여성 예술인의 성공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고려할 때, 해당 사업을 확대하면 여성 예술인들에게 발생하는 성별 불평등을 보정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예요.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사회 전반적인 의식의 개선이예요. 훌륭한 예술, 그리고 훌륭한 예술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예요. 대중에게 보여줄만한 훌륭한 예술을 걸러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게이트피커들 역시 사회의 일원이고, 예술을 최종적으로 감상하는 대중은 말할 것도 없죠. 이러한 성별 불평등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예술을 즐겨보면 어떨까요? ‘좋다’, ‘별로다’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하던 예술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