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대학원생

“안녕하세요, 저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폴리라고 해요. 세 살이죠. 우리 엄마가 뭐 하는 분이냐고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우리 엄마도 학교에 다녀요. 저는 어린이집에서 노는데 엄마는 대학원 언니 오빠들과 같이 공부하나봐요. 우리 엄마는 정말정말 바빠요. 아침엔 제가 먹을 밥을 차려주고요, 중간에 학교에서 수업도 듣다가 밤에 집에 와서 집을 치워요. 밤에도 저를 재우고 또 책상 앞에 앉아 있어요.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바쁜 걸까요?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바빴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폴리버리레터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폴리의 짧은 편지로 시작합니다. 이번 레터의 주제가 폴리의 엄마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엄마이자 대학원생인 ‘엄마대학원생’의 고군분투이기 때문이죠. 편지의 말미에 언급된 것처럼, 이들은 학업과 가정의 일을 병행하느라 너무나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폴리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도록, 이번 레터에서는 실제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엄마대학생원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법이 필요할지를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일-가정 양립? 학업-가정 양립!  

일-가정 양립 정책은 경력이 있는 여성이 결혼, 임신, 출산 등의 이유로 원치 않게 직장을 떠나는 일을 막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엄마대학원생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에게 학업은 노동이라는 점입니다. 즉각적인 경제적 보상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경력을 추구하는 동시에 가정에서의 역할을 기대받는다는 점에서 엄마대학원생의 경험은 일-가정 양립, 아니, 학업-가정 양립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그렇듯, 학문을 업으로 삼는 엄마대학원생들도 학업과 가정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학원에서는 연구하고 실적을 내야 하는 대학원생의 역할을 요구받는 동시에 가정에서는 좋은 엄마/아내로서 가정 일에 충실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아비판

먼저 엄마대학원생이 대학원생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해볼까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수업을 듣고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대학원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일 없이 온전히 학문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사실이죠. 주변에 대학원생이 있거나 본인이 대학원생이라면 아시겠지만, 대학원생의 하루는 온종일 공부와 연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업을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 유연하게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언제나 연구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죠. 공부만 해도 이렇게 바쁜 와중에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연구참여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하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이 도태되었다는 감각을 느끼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대학원에 갈 만큼 공부를 좋아하고 잘 해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육아의 어려움과 함께 따라오는 새로운 힘듦이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어려움은 곧 우울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자신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하면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요. 특히 일반적인 직장을 다녔더라면 나라나 회사에서 마련해준 보육제도를 활용하며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력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특별히 더 어려운 현실 속에서 박탈감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엄마대학원생의 우울, 분노, 자격지심은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고 말하는 사회구조로 인해 만들어지고 강화됩니다. 특히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비난하게 하죠.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한 학위과정을 지속한다는 것은 당장 돈이 급하지 않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지적유희’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인식은 이들을 아이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기적인 엄마로 비춰지게 합니다. 연구참여자들은 (시)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대리양육자로부터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을 주지 않는 ‘나쁜 엄마’라는 비난을 들어왔으며, 스스로도 아이를 남의 손에 자라게 한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즉, ‘제대로 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대리양육자를 구하는 이유를 인정받지 못하고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상태에 대한 비난을 감내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죠.

💡 엄마인 대학원생은 고려하지 않는 제도

엄마대학원생들은 엄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대학원과 어린이집의 시간체계가 서로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수업은 보통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나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오전 9시 전후로 등원을 시키고 오후 5시 전후로 하원을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등하원 도우미가 없는 엄마대학원생들은 홀로 이 일정을 감당해야 하는데, 이 경우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일찍 나오거나 그 시간에 있는 수업은 아예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또, 이들은 숙박이 필요한 학술행사나 급작스러운 회의나 연구 일정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반드시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에서 평판이 떨어지거나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딜레마 속에서 위태롭게 일정을 조율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어려움은 ‘엄마’인 연구자를 고려하지 않는 연구 환경에서도 이어집니다. 화학약품을 다루는 이공계 실험실을 한 번 생각해볼까요? 일반적인 실험 시 주의사항은 마련되어 있지만, 임신 중인 학생이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지침이나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연구참여자들의 증언은 엄마인 대학원생을 상상해보지 않은 한국 학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일상적인 학교 공간에서도 엄마인 학생이 배제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요.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 (대학을 다니셨다면) 본인이 나온 대학에서 수유실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는 분이 계실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잘 기억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연구참여자들의 말에 따르면 학내에 수유실이 적절히 설치되어 있지 않아 화장실, 청소노동자 휴게실, 승용차 등의 공간에서 유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요. 수유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비한 환경 속에서 연구참여자들은 학교가 자신이 있을 곳을 마련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소외와 배제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호해주는 정책이 단 하나도 없냐고요? 그건 아닙니다. 일반 직장의 육아휴직과 비슷한 개념으로 출산/육아 휴학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대학이 있기도 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렇게 휴학을 길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팀 단위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공계 연구실에서는 당연히 어렵고, 홀로 연구하는 인문계 대학원생 또한 학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학교로 돌아와서 동료들과 네트워킹을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대학원생들의 모성을 보호하는 것은 담당 교수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은 엄마대학원생들이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을 보다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어요.

‘먹는 약’과 '임신중지'

‘임신중지 약’, 흔히  낙태약 또는 미프진이라고 불리는 유산유도약 도입에 관한 논의는 200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이후 약 20년간 암암리에 유통되고 거래되어 왔죠. 2019년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유산유도약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텄습니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미프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증폭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의 임신중지에 대한 규제와 금기, 낙인이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피임약 논쟁의 연장선에서 유산유도약에 관한 논쟁도 ‘안전성’과 ‘오남용’, ‘생명경시풍조’에 관한 문제제기가 반복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여성들을 자신의 몸과 건강을 책임지고 스스로 돌보는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피임약에 대한 접근이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 과연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실질적으로 피임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여겨진 것인 가에 대한 문제제기 입니다. 우리나라 피임 정책 기조는 여전히 미혼모 예방이라는 목적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여성의 성적 실천 자체를 문제시하는 태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죠. 미혼여성의 임신조절 실천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작동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임신조절을 권리로 누릴 수 있었을까요? 유산유도약이 합법화된다고 한들, 재생산 권리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엄마대학원생들은 엄마라는 역할과 대학원생이라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이를 조정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의 어려움은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과, 대학이라는 공간이 대학원생이 엄마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현행법상으로 대학원생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부터도 배제되고, 이로 인해 어린이집 등 보육제도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됩니다. 때문에 사적으로 육아도우미를 고용할 수밖에 없어 경제적인 부담이 더해지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함으로써 현재 존재하는 보육제도의 대상을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대학 기관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서 본 것처럼, 엄마대학원생들은 유축할 공간이 없어 여러 곳을 전전하고, 임신 중에 위험한 약품 앞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또, 수업 때문에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을 맞추지 못하기도 하죠. 대학원생이 육아를 하는 엄마, 아빠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대학원에서의 공식적인 수업과 회의 일정을 오후 4시 전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각 건물마다 수유실을 만들고 관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임신 중인 대학원생의 건강을 위해 연구실마다 지침을 만들어 배포하는 식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절실합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제도는 금방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옆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수, 동료 대학원생, 가족들이 대학원을 미래 커리어를 위한 투자 혹은 현재의 업(業)으로써 인식하고 엄마들의 커리어와 모성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