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

여러분에게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레터에서는 노동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연구를 소개하려고 해요. 구직 중이거나 일을 하고 있는 20대 여성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분석한 신경아 선생님의 연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받고 지친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긍정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청년 여성이 가진 노동 정체성

지금 우리 경제는 사람을 새로 고용하지 않고 성장하고 있어요.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이도 심하고요, 이직도 많이 일어나고 한 직장이 평생 생계를 책임져주지도 않고요. 이런 상황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지요. 청년들이 경험하는 고용불안정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신경아 선생님은 20대 청년 여성들이 노동과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았다고 해요. 인터넷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실린 30편의 에세이를 통해 분석했는데요, 그 에세이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경험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삶과 미래, 꿈, 정체성에 대해 쓴 글들이에요.

기성세대가 산업화세대라는 점에서 일 중심적 삶과 성장우선주의에 가치를 부여했다면, 20대 청년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시대를 살아왔고 민주화 이후 소비사회, 개인주의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일과 직업, 노동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또, 여성들은 같은 연령층 남성보다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대요. 남성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장래 발전 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는데, 여성은 자신의 적성과 취향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고 해요.

💡 '슈퍼 을', '어린 여자', '불안'

30명의 청년 여성들이 쓴 에세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키워드는 ‘슈퍼 을’, ‘어린 여자’, ‘불안’이에요. 보통 막내로 일하는 여직원들은 자신의 고유 업무가 아닌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 해요. 재무, 상품 판매, 재고 관리, 사무실 청결 유지, 비서 노릇 등 이것저것 도맡지만 쉬운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소통 없는 조직문화 속에서 어떤 권위도 없고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황은 스스로를 ‘슈퍼 을’로 느끼게끔 만들어요.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대기업, 중소기업, 서비스업 등 직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요.

‘어린 여자’로 취급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가 적다는 걸 넘어 업무에 대한 숙련도를 갖추지 못한 여자,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자,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지 않은 여자로 여겨진다는 말이에요. 이런 용어는 언제라도 무시당하거나 감정노동과 성희롱을 겪을 수 있는 취약한 대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꾸준히 회사를 몇 년이나 다녔는가’ 하는 근속년수가 승진과 임금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계약직 등 비정규직과 실업 상태를 왔다갔다 이동하는 경험을 반복하는 20대 여성들은 저임금 상태가 지속될 수 있어요.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놓인 경우, 일자리가 있어도 계속 마음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 노동이란… 돈 벌기 위한 수단? Vs. 나 자신으로 설 수 있게 해주는 것?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해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우울감을 느낄 수 있어요.

수민: 처음에는 포부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하청기업에게 손해가 되는 일도 받아들이도록 윽박질러야 하는 자신의 업무에 회의감을 느꼈어요. 부당한 착취 속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자신을 보며 점차 자기를 잃어간다고 생각했어요.

뽀뽀스: 정규직이지만 인턴사원을 쉽게 자르고 쉽게 교체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역시 사람을 도구처럼 다루는 일에 동조하고 있다고 느껴요. 회사를 위해 희생만 하는 게 아니라 노동보다 삶을 우선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경우, 업무에서 상대적인 자율성이 확보되는 경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경우,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는 여전히 생계가 불안정하고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직장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위기가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해요.

한편으로는 수입이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어도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화: 사람답게 잘 사는 일을 찾아서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지만 잦은 야근, 권위적인 관료제 문화,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일을 그만뒀어요. 자유롭게 삶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택했고, 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어요.

단단: 존재가 오로지 일로 규정되는 게 서글퍼서 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구립 청소년센터 청소년활동가 일을 찾았어요. 청소년을 만나는 일이 가슴 뛰고 설렌다고 해요.

김민경: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며 장애학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어요. 돌봄 노동을 하면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동시에 배울 수 있어서 만족한대요.

은정: 협동조합에서 교육잡지 편집 일을 택했어요.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어필해야되는 게 아니라 “함께 생존해가기 위해 협력”하는 회사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이들은 모두 상처받은 과거의 노동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고, 노동 중심적이었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들에게 ‘일’이란,

연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가장 자신답게, 원하는 삶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윤우: “선택의 영역이지 강제적 영역이 아니에요. 좋은 삶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고,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잘하는 일을 할거예요.”

김민경: “현재 자신에게 가장 가치있는 활동을 ‘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가치가 아니어도 어떤 걸 생산하고 그 활동에서 만족감을 느끼면 일”이 될 수 있어요.

 이러한 노동 정체성은 노동을 삶의 중심으로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일을 해야만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생긴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에요. 신경아 선생님은 20대 여성들이 그리는 노동 정체성이 “생계유지라는 도구적 의미의 일이 아니라 역량과 자율성, 관계맺음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서의 일”을 그리는 새로운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어요.

여전히 불안하지만...

물론 여전히 우리의 삶은 자본주의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노동 정체성이 완전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을 찾은 이 여성들은 협동조합이나 장애인 활동보조, 청소년 활동가 등 공공성이 높은 일을 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은 사실 많은 경우 저임금이지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과 다른 방식을 택한 사람들이 빈곤 상태로 떨어지게끔 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가 공공성의 가치를 지금보다 높게 평가해줘야 해요.

여러분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요? 오늘 폴리버리 레터를 통해서는 여러분께 조금은 다른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