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제도는 너무 좋지만...

이 업계는 야근이 일상이야

💡야근이 잦은 직업에서 유급휴가는 그림의 떡? 

저자들은 각 직업 별로 주 50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계산하여, 초과근무 문화가 유급휴가 및 유연근무제 사용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로운데요, 직업 별로 초과근무자 비율이 10% 증가할수록 노동자들이 유급휴가를 사용할 가능성은 9%씩 줄어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초과근무자 비율이 차이가 나는 서비스직과 외과의사를 비교해볼게요. 초과근무자가 10%밖에 되지 않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24%가 유급휴가를 사용하는 반면, 초과근무자가 60%를 상회하는 외과의사의 경우 오직 9%만이 유급휴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해석하자면, 이상적 노동자 규범이 팽배한 직업군에서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유급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죠. 다만 이때 성별에 따른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적어도 유급휴가 사용 이유가 성별에 따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패널티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연근무를 택하도록 내몰리는 엄마들 

만약 이상적 노동자 규범이 일관되게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면 초과근무자 비율이 높은 직업에서는 유연근무를 택하는 사람도 적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겠죠. 특히 사무실에서 초과근무를 하는 게 일반적인 직업군에서 근무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재량근무를 선택한다면, 고용주나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개연성이 크니까요. 그런데 실제 연구결과를 보면 초과근무자 비율이 많다 하더라도 유연근무를 택하는 사람이 더 적어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건 왜 그럴까요? 

미리 답을 말씀드리자면,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엄마들은 육아'휴직'보다는 연차, 월차 등의 단기적 업무조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인데요! 더 자세한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저자들은 여전히 가사노동이 대부분 여성의 책임으로 인식된다는 점과 남성이 스스로를 일-가정 양립 제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인식할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해당 효과가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지를 추가적으로 검토합니다. 그 결과, 남성은 초과근무 문화가 팽배해질수록, 즉 해당 직업 종사자 중 초과근무자 비율이 높아질수록 유연근무제를 사용할 가능성이 낮아진 반면, 여성은 초과근무 문화와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유연근무제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여성에게 가족 구성원 돌봄에 대한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에, 설령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한 환경일지라도 유연근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효과는 특히 자녀가 있는 여성, 즉 엄마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정리하자면, 남성들은 아이가 있든 없든 초과근무자 비율이 높은 환경에서는 유연근무제를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반면,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오히려 초과근무 문화가 팽배한 환경일수록 유연근무제를 잘 사용한다는 것이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엄마들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이상적 노동자 규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의 경우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4시인데, 엄마들은 이 시간에 맞추기 위해 4시 전에 업무를 끝낼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차이는 돌봄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여성, 특히 엄마들에게 지워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엄마들의 적극적인 유연근무제 사용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나쁘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유연근무제 덕분에 엄마들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아이를 돌보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문직, 관리직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죠.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는 엄마들은 필연적으로 해당 직업 내에 퍼져있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범을 어기면서 낙인 찍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승진이나 임금인상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게다가 이러한 문화는 아빠들에게도 독이 될 수 있는데요. 싶어도 언제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기대 때문에,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아빠들이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를 사용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적인 현상을 훑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쳐야 할까요?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과근무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겠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초과근무 자체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어보여요. 예컨대 아래 제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해 볼 수 있겠죠. 

• 자녀를 둔 노동자의 유연근로제 사용 의무화
• 각 사업체에 일-가정 양립 제도 사용률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 모든 노동자에 대한 법정 근로시간 단축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하고,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구조 속에서는 그 어떤 훌륭한 제도가 도입되어도 목적한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없을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일과 가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초저출생을 정말로 빠져나오고 싶다면 부모라는 역할과 노동자라는 역할을 죄책감 없이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도의 실질적인 효과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일을 가정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이상적 노동자’ 규범에 균열을 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