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 vs. 아싸

초중고 학창 시절, 그리고 대학생 시절, 여러분은 ‘인싸’였나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활발하게 관계를 맺는 사교적인 사람은 ‘인싸(인사이더)’라는 칭호를 얻게 되죠. 반대로 비교적 적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은 ‘아싸(아웃사이더)’고요. 그런데 ‘인싸’가 되는 것이 직업에서의 성공과 특별하게 밀접한 관계를 맺는 분야가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미술, 음악, 패션 디자인, 텔레비전, 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예술 분야’예요. 조금 학문적으로 표현해 볼 때, 인싸는 다른 사람과 네트워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번 폴리버리 레터에서는 예술 분야에서의 직업적 성공과 사회적 자본 간의 관련성, 그리고 그에 따른 불평등을 다루는 연구를 소개해보고자 해요.

예술 분야에서 사회적 자본, 왜 중요한데?

아니, 친구가 많아 사회 자본이 풍부하다는 것, 이것은 사실 비단 예술 분야뿐 아니라 전체 직업 모두에서 도움이 되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예술 분야는 다른 보편적인 노동 분야와는 다른 노동의 특수성 때문에 사회적 자본에 더 영향을 많이 받곤 해요. 우리는 몇 달 전 성공의 불확실성 및 극소수의 정규직 등 노동 시장에서 예술가의 특수성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참고하면 이해가 더 쉬울 거예요(지난 폴리버리 레터 보러 가기💌).

예술 직군 종사자들은 다른 성과보다도 최근의 성과에 따라 평가를 받고, 그 이유로 계속해서 성공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우수함을 증명해야 해요. 그리고 이때, 예술 분야의 작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필요로 해, 본질적으로 협력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관에 갔을 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엔딩 크레딧이 몇 분 동안 쉬지 않고 제작에 도움을 준 수많은 사람들을 차례로 보여주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예요. 이렇듯 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업 기회를 탐색하고, 자신이 속한 예술계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주목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요.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인물과 협업을 하는 것 역시 너무나 중요하고요. “나는 이름 모를 감독 10명과 협업했어.”라는 경력보다 “나는 청룡 영화상을 받은 000 감독과 협업했어.”라는 경력 한 줄이 그 사람을 더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예요. 그리고 이러한 전반적인 노력의 과정 속에서, 사회적 자본은 성공 기회를 잡을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동원될 수 있는 것이죠.

대학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자본

그리고 이때 ‘대학’은 사회적 자본을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각 디자인과’, ‘영화학과’와 같이 대학 내부에서는 전공이 나누어져 있어 각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가시적으로 묶어주죠. 게다가 같은 학과 내부 이외에도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학회, 동아리, 수업, 그 외 기타 활동을 통해 교수진, 선배, 동급생 등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 오늘 소개할 연구에서는 이런 대학 내에서의 사회자본 형성에 주목하여 학생들이 대학 생활 중 형성하는 사회자본이 학생들의 졸업 후 예술 분야 직업에 종사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연구자들은 미국 내 132개 예술 대학 및 예술 전문 교육 기관의 예술 관련 학위 취득자 25,46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어요. 그리고 이들이 학교 내에서 형성하는 각각의 네트워크가 자신의 졸업 후 진로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평가하게 하여 그 총량을 구해 사회적 자본의 정도를 정의하였어요. 그리고 이때 사회적 자본은 학생들의 예술 직업 시장 진입,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장기적 성과 회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죠. 대학 시절 높은 사회적 자본을 얻은 학생들은 졸업후에 더 짧은 시간 내에 첫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직장은 예술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직장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을 가질 때, 학생들은 예술 분야에서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요. 이전 폴리버리 레터에서 다룬 것과 같이, 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고정된 직장을 얻기 어렵고 프리랜서나 비정규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대학에 다니면서 네트워크를 쌓은 사람들은 이 불안정함을 효과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지난 폴리버리 레터 보러 가기💌).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사회적 자본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자본을 효과적으로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부유한 가정 출신 학생들은 학교에 다닐 때 학업 및 네트워킹 활동에만 집중하여 사회적 자본을 효과적으로 쌓을 수 있는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은 가정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학비 및 생활비를 벌고자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어요. 이것은 곧 그들이 학업 및 네트워킹에 투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 및 기회가 더 적음을 의미하죠. 그리고 더 근본적인 불평등을 따지면, 애초에 예술 계열 대학 자체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따질 때,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더 수월하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거예요. 예술 분야는 대학 진학 이전부터 실기 능력을 길러야 하고, 이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이 불평등은 다른 전공 계열보다 극심할 수 있어요. 이런 불평등이 존재하는 가운데, 연구자들은 이 사회적 자본을 구축 및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이 남녀 간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 여성 인싸 예술가보다 유리한 남성 인싸 예술가

연구자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기 유리한 위치에 있고, 이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은 평균적으로 더 적고 제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이 네트워크는 가족이나 친구 등으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요. 예술 직업 시장에서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네트워크는 많은 경우 고위직과의 네트워크인데, 여성들은 이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회로 나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성별 불평등은 사회적 자본이 적은 경우보다 많은 경우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해요. 사회적 자본이 똑같이 많은데, 여성의 경우가 첫 직장 탐색 시간도 남성에 비해 길어지고, 예술 분야와 연관된 직업을 찾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자본이 많은 남성은 사회적 자본이 많은 여성보다 사회적 자본을 잘 활용해 예술 분야에서 더 오래 활동할 수 있고,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해요. 직업 시장 진입부터 그 안에서의 생존까지, 전반적으로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죠. 

💡 그리고 놀랍게도 대다수의 예술 전공자는 여성!

결국 연구의 결론은 예술 직업 시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를 점한다는 것인데요, 연구에서 언급되는 예술 대학/교육기관에서의 남녀 성비는 사태의 심각성을 더 잘 보여줍니다. 연구에서는 여성들이 예술 대학 및 교육기관에서 전체 졸업생의 61%, 즉 과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너무나 많은 여성 졸업생들이 예술 교육을 받게 되는 가운데, 그녀들은 남성보다 사회적 자본에 접근할 기회가 더 적고, 사회에 나와서도 지속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그녀들은 예술과 관련 적은 직업을 얻어 흩어지게 되고, 운 좋게 관련 깊은 직업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지속적인 생존에 불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미국 학교들의 연구이지만, 한국 사례에도 아주 잘 접목될 수 있어요. 실제 한국 대학들의 예술 관련 학과들에서 많은 경우 여성의 성비가 남성보다 훨씬 높은 가운데, 직업 시장에서는 이러한 성비가 뒤바뀐다는 사실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류정아, 2009.06.18.). 시작은 절대 다수였지만 직업 시장에 진입할 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흩어지고 사라지는 여성 예술 꿈나무들, 해결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사회적 자본은 친교의 목적으로 사적인 영역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정책적 개입이 쉽지 않아 보여요. 하지만 그럼에도 성별 간, 그리고 그 외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네트워킹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특히나 여성들이 더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예술계는 다른 직업 분야에 비해 추상적인 예술성의 평가 기준, 협업의 복잡성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적 자본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데, 사회적 자본에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개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것 역시 사회적 자본의 불평등한 분배가 야기하는 불평등을 줄이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