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버리 💙 여러분 (feat. 3주년)

안녕하세요? 폴리버리 레터입니다. 갑자기 이렇게 새삼스러운 인사라니, 무슨 일인가 싶으시죠? 저희가 구독자님들께 처음 인사드린 것이 딱 4년 전 오늘(2021년 9월 30일)이더라고요. 언제나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폴리버리 레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특별히 두 번에 나누어 지금까지 폴리버리가 다루었던 레터를 총망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해요.

폴리버리 레터는 첫 호부터 지금까지 쭉 여성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을 짚어내고, (무)의식적 차원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경로를 끊어내기 위해 정책적 개입이 필요함을 역설해 왔습니다. 지난 3년간 발행된 67개의 레터는 크게 네 가지 주제(노동시장, 재생산 노동, 젠더폭력, 여성성)를 다루었는데요. 지금까지 소개된 학계에서의 논의를 기반으로, 각 주제 별로 성평등을 저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호에서는 노동시장과 재생산 노동에 대해 먼저 확인해보시죠! 

Keyword: 노동시장

💡성차별적인 평가기제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채용과정에서, 입사 후 성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받으며 ‘여성’에게 씌워지는 편견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채용과정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가장 큰 편견은 나이에 관련된 것입니다. 구직을 하는 여성의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곧 결혼, 임신, 출산 때문에 직장을 떠날’ 상태로 인식되어 선발을 꺼린다는 것이죠. 반면 남성의 경우 나이가 많아질수록 성숙한 모습을 기대하며 나이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아 두 성별 간 채용 가능성에 격차가 커지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채용시장에 처음 발을 딛는 20대 초반 여성의 경우 같은 나이대의 남성과 같은 평가기준을 적용받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채용담당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지원자에게 사교적인 성격을 기대한다고 해요. 그래서 남성이 잘 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이공계열 전공에서 너무 좋은 학점을 받았을 경우, 사회생활은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채용 평가 시 불이익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공계 전공이 아닌 직무는 채용기회가 잘 없는데, 이공계 전공인 직무에서는 성적이 좋아도 (실제도 아닌) 성격 때문에 더 적은 기회를 얻는다니, 여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이중잣대는 정말 버거워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울어진 채용시장에서 기회를 얻어 입사하게 되더라도 업무 평가에서 또 다른 차별에 마주할 수 있는데요. 이때도 특정 성별에게 기대되는 성격을 갖지 않은 경우 부정적인 업무평가를 받게 됩니다. 예컨대 여성이 남성의 성격이라 생각되는 책임감, 리더십 등을 보였을 때 ‘공격적’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성별에 대한 기대에 순응하는 여성 직원은 주도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지적받곤 합니다. 악순환인 셈이죠. 또, 업무 능력과 별개로 네트워킹을 잘 하는 것이 커리어 개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좁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사무직뿐 아니라 예술직종에서도 마찬가지로, 직종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이예요.

💡업무 외 노동

여성은 업무 외에 또 다른 노동을 수행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데요. 흔히 꾸밈 노동이라고 부르는 ‘미적 노동’과 일체의 감정노동 및 돌봄노동을 포함한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work)’이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미적 노동은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만큼 외양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성별을 막론하고 수행되지만, 특히 여성에게 더 강하게 요구된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양상을 띕니다. 또, 판매직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에서는 미적 노동을 수행하는 것이 요구되지만, 관리직과 같은 높은 직급에 있는 여성의 꾸밈은 오히려 그 여성을 얕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이중적이고 까다로운 노동입니다.

한편 보이지 않는 노동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노동의 분배방식이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팀원의 생일파티를 기획하거나 탕비실을 정리하는 일처럼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들이 여성의 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죠. 이는 여성이 직장에서 실제 업무 외에 더 많은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노동은 여성을 포함하여 그 조직 내에 가장 불안한 지위를 가진 이들이(비정규직, 저학력 등) 감내하게 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어요.

Keyword: 재생산 노동 

💡내 안에 충돌하는 두 개의 자아: ‘이상적 노동자’ vs. ‘엄마/아빠’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은 가정에서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데요. 과거처럼 남성 가장 혼자의 벌이만으로 한 가족이 먹고 살기 어려워진 현대사회에서, 부부가 맞벌이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로 인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 일과 가정의 균형이 무엇보다 절실할 텐데요. 많은 문헌에서 아빠들의 육아참여를 방해하고 엄마들의 부담을 늘리는 가장 주된 원인으로 ‘이상적 노동자(ideal worker)’ 규범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전 레터에서 많이 소개된 개념이라 이제 익숙하시죠? 이상적 노동자 규범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언제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자가 이상적인 노동자로 인식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러한 규범은 특히 남성들에게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직장에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 같은 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어도 아빠들이 섣불리 이러한 제도를 사용하기에는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대신 가정의 일은 여성의 일이라는 통념 때문에 여성의 유연근무 사용률은 남성보다 높은 편인데요. 문제는 유연근무 사용이 여성에게 이중부담으로 다가올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부부 중 아내만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는 경우, 자연스레 가사노동이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 되어 오히려 불평등한 분업을 가속화하게 되는 것이죠.

💡여전히 불평등한 가사분담

그럼 부부의 노동조건이 비슷하고, 둘 모두 성평등을 지향하는 상황에서는 가사노동이 평등하게 분담되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아니오’입니다. 특히 불평등한 가사분담의 결과를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더 꼼꼼하기 때문에’ 등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 흥미로운데요. 인지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을 피하고자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성별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무의식이 얼마나 확고하게 가사노동을 여성의 일로 여기는지를 보여주죠.

📌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 이 모든 것이 문제인 까닭은 우리가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잘못된 인식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인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인간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편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이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위와 같은 편향을 발견하고 제어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 또, 남성과 여성이 모두 가정에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많은 제도적 노력이 있었으나, 여전히 평등한 분배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제도적으로 부모의 돌봄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큰 결실이지만, 모든 성별이 제도를 활용하도록 의무화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계속해서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우리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젠더폭력과 여성성에 대한 리뷰는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다음 호에서 전해드릴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