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참고인 신분으로 직접 출석하여 자신이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증언을 해서 화제가 되었어요. 타 아이돌 매니저가 자신이 담당하는 아이돌에게 하니의 인사를 무시하라고 말한 일, 멤버들이 하이브의 고위 인사에게 항상 인사를 무시당한 일, 하이브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뉴진스를 비방하는 글을 쓴 일 등을 증언한 하니는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죠.

아티스트는 애초에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이 맞을까?

그런데 이때, 하니가 주장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한국의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즉,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회사 내에서 ‘아티스트’ 신분을 가지고 있는 하니나 다른 뉴진스 멤버들이 ‘근로자’, 즉 노동자에 해당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같은 날, 뉴진스의 소속사인 어도어의 김주영 대표는 아티스트도 직장 내 괴롭힘의 보호 대상이 보냐는 질문에 "현재 관련법상으로는 아티스트는 근로자성에 포함되지는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라는 답을 하며 아티스트의 노동자성을 부정했죠. 이것은 과거 고용노동부에서 2010년에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는 연예인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대상자’라고 구분하였다는 점에 근거했을 거예요. 더불어, 김주영 대표는 이 이후에 있었던 아티스트는 회사의 구성원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광의로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라는 답변을 하며 끝내 아티스트의 노동자성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죠.

여기에서 언급되는 ‘아티스트’는 연예인이라는 예술업계 종사자 중 일부를 지칭한 표현이지만, 이를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인 ‘예술가’의 노동자성 자체도 오랜 기간 학계에서 논의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연예인들이 근로자의 대상으로 포섭되지 못하였듯이, 이들의 노동자성 역시 오랜 기간 노동 논의에서 소외되어 왔죠. 이번 폴리버리 레터에서는 이런 예술가의 노동자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해요.

예술가? 그게 무슨 노동자야!

여러분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노동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아마 많이들 사무실에 앉아 회사 업무를 수행하거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을 거예요. 이러한 보편적인 노동자의 이미지는 보편적인 예술가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받아들여졌고, 사회 통념적으로 예술가는 보편적인 노동자 개념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곤 했어요.

💡 노동자라기보다는 기업가나 자본가지!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고용 관계를 벗어나 본인만의 창의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자신의 예술적 활동과 그 결과물을 상품화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어요. 또한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창출한 경제적 성과를 다시 자신의 창작 활동에 재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적 자본을 축적해 나가는 존재로 여겨지죠. 이러한 예술가의 이미지는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 혹은 자신의 직업 활동에서 전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수입을 재투자하는 자본가와 더 비슷하다고 받아들여지곤 했습니다.

사실은 상당 부분 노동자인 예술가들

예술가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독립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통적 노동자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지속적인 수입 보장 없는 단기 계약을 체결하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현재의 소득도 불안정할뿐더러 미래 소득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예술가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죠. ‘예술가’라는 이름은 화려하고, 성공한 예술가는 많은 부와 사회적 인정을 거머쥘 수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예술가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예술가는 예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 등 겸업을 하게 되고, 겸업을 하고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죠. 세계적인 아이돌로 성공한 뉴진스는 당연하게도 많은 수입을 거두어들이지만, 사실 이런 성공한 아이돌보다는 실패한 아이돌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은 이러한 예술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에요. 예술가들이 직면하는 이러한 열악함은 기업가나 자본가의 모습보다는 생계 유지를 목적으로 노동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술가는 본인만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장의 요구 및 고용주의 기대에 따라 작품을 제작해야만 하는 노동적 종속성을 경험합니다. 그들만의 색을 자율적으로 추구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작업 결과물이 소비자 및 고용주의 입맛에 부합하지 않으면 수입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죠. 더불어, 예술 작업은 창의성 발휘와는 별개로 상당 부분 규칙적인 반복 작업을 수반한다는 점에서도 노동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가 본질적으로 가지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노동자 논의에서 제외되었지만, 사실 그들은 노동자의 특성 역시 동시에, 상당 부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전반적인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경제적 불안정성 및 고용 불안, 그 외 수많은 위험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법적 보호가 미비한 상태에서 예술가들은 근로 조건에 대한 협상력도 부족하고, 안정된 사회적 보장도 없이 고용주나 시장의 요구에 종속되기 쉬운 취약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다행히,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의 노동자성이 아예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니에요. 법적인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만 근로자에게 보장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데, 한국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어요. 4년 전인 2020년, <친정엄마>라는 뮤지컬의 제작진 및 출연자들이 국가로부터 소액체당금을 지급받으며, ‘노동자’로서 국가로부터 구제받는 것에 성공한 사례가 있어요. 이것으로 적어도 그들의 ‘법적인 근로자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죠. 이는 긍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불과 4년 전의 일이고, 여전히 다양한 예술가들은 근로자성에 대한 논의에서 소외되어 있기에,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어요.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은 극소수 예술가들의 것이고, 사실 대다수 예술가들은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했어요. 그 결과로 현재 우리나라는 예술가들의 직업적 지위 및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복지 지원을 위해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죠. 하지만 이것 또한 2011년에 한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사건을 계기로 2012년에 제정되어 시행된 법으로, 역사가 길지는 않아요.

15일에 있었던 국정감사에서는 아티스트가 급여가 많다고 하여 그들의 노동자성이 부정될 수는 없으며, 뉴진스의 사례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견들이 있었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 산업의 확장, 플랫폼 노동 종사자 증가 등으로,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어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연예인 및 예술가들을 비롯하여 그 외에도 추가적으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직군들의 권리에 대해 논의하고, 그들을 노동법의 보호 대상으로 포섭하는 등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