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잘 하는 여자, 어떤데?

여러분은 평소에 운동 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자주 하나요? 올림픽 등 각종 체육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유명세를 얻은 여성 운동 선수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남성과 여성 중 운동과 가까운 성별을 뽑자면, 그것은 남성이예요. 그러니까 스포츠는 많은 경우 남성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고정관념은 단순한 사회적 편견이 아니라, 실제 통계에서도 반영됩니다. 아래에 제시되어 있는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 자료를 한 번 볼까요? 이 조사 결과의 연도별 추이를 살폈을 때 한국 청소년들의 하루60분 주5일 이상 신체활동 실천율과 주3일 이상 근력강화운동 실천율은 매년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특히 주3일 이상 근력강화운동 실천율의 경우 중학생보다 성인에 가까워지는 고등학생일 때 그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요. 이것은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성장과정 전반에 걸쳐 운동이 남성적인 활동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환경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어요. 오늘 폴리버리 레터에서는 이런 스포츠와 젠더를 함께 다룬 다른 나라의 재미있는 연구를 소개해 보고자 해요. 바로 스포츠를 통해 여성들이 기존의 젠더 규범에 맞서는 방식에 대해 탐구한 연구입니다.

하루60분 주5일 이상 신체활동 실천율 추이(청소년건강행태조사, 질병관리청)

주3일 이상 근력강화운동 실천율 추이(청소년건강행태조사, 질병관리청)

여자가 운동을?! 말도 안 돼!

연구자들은 남아메리카의 국가들 중 하나인 콜롬비아에서 연구를 진행했어요. 콜롬비아는 역사적, 종교적 맥락에서 엄격한 가부장제를 추구하는 국가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나뉘어져 있어요. 남성은 마초적인 이미지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한편, 여성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인형 같이 순종적이고도 헌신적인 어머니가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이런 콜롬비아에서 여성의 역할은 가정을 꾸리고 출산 및 돌봄을 수행하는 것에 한정되었다고 해요. 1980년대에 경제 위기를 맞은 이후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남녀 간의 엄격한 역할 구분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지요.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콜롬비아에서 스포츠는 오랜 기간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활동이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남성성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여성에게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거예요. 여성이 스포츠, 그 중에서도 축구와 같이 특별히 남성적인 스포츠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이 금기를 어기는 여성이 있다면 여성스럽지 않다는 사회적 비판과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고 해요.

아니, 말 돼!

그런데 이런 콜롬비아에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어요. 바로 콜롬비아에서도 SDP(Sport for Development and Peace) 운동이 확산된 거예요. SDP 운동이란, 스포츠에 단순한 신체적 활동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여 스포츠를 사회 변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운동이예요. 이것은 UN과 IOC, FIFA 등 다양한 국제 기구에서 주도하여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죠. 콜롬비아에 SDP 운동이 도입된 것은 1990년대였는데, 당시 콜롬비아에서는 운동의 목표로 ‘폭력 감소’와 ‘성평등’을 설정하고, 성평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독려했어요. 이런 변화의 물결이 이어져 온 가운데, 연구자들은 2015년에 6개월간 콜롬비아 도시 변두리의 소외된 지역 두 곳에서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수행하며 젊은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방식 및 일상적/사회적 실천,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했습니다. 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VIDA라는 비정부 기구에서 진행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거나 임신과 같은 이유로 지금은 스포츠를 쉬고 있지만 과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었어요.

스포츠에서 시작해 사회 변화까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연구 결과, 스포츠에 참여하는 콜롬비아 여성들은 부정적 시선과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고 일부 타협하는 한편, 지속적인 스포츠 활동 및 자기 정체성 강화를 통해 이러한 편견에 저항하고, 젠더 규범을 재구성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하나하나 확인해 볼까요?

💡 스포츠 하는 너, 남자 같잖아!

콜롬비아에서 SDP 운동이 일어나고 수십년이 흘렀지만, 연구가 이루어진 지역에서 스포츠에 참여하는 여성은 비교적 소수였다고 해요. 이것은 연구가 이루어진 곳이 대도시가 아닌 도시 변두리의 낙후된 지역이었기 때문도 있겠죠. 이 지역에서 VID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많은 비난과 낙인을 마주해야만 했어요. ‘여성스럽지 않다’, ‘남자처럼 보인다’, ‘스포츠에 참여한 이후로 외모가 예전 같지 못하다’ 등 주로 그들이 전통적인 여성성에 어긋나게 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었죠.

VIDA의 여성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자신과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죠. 어떤 여성은 스포츠를 하면서도 쉬는 시간에는 화장을 고치는 등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도 최대한 여성성을 강조하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아예 VIDA를 떠나 스포츠를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여성들

하지만 모든 참가자들이 이런 비판에 못 이겨 스포츠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어요. 경기장에서는 남성 선수들이,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가운데, 쏟아지는 비난을 아예 무시해버리거나,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여성들도 있었죠. 그리고 이들은 자신은 그냥 운동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당당하게 스포츠를 지속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불어, 경기장 안에서 당당하게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물론, 경기장 밖에서도 수동적인 여성을 선호했던 기존의 젠더 규범을 거부하고 그에 반발하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들 역시 볼 수 있었다고 해요. 그들은 스포츠를 통해 단순히 운동 이상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어했던 SDP 운동의 목표와 걸맞게, 사회전반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여성성’이라는 틀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고 할 수 있죠.

💡 변화의 불씨?

VIDA 활동을 통해 변화한 것은 비단 그것에 참여하는 여성만이 아니었어요. 처음에 여성이 자신들과 함께 경기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남성 선수들, 그리고 딸의 스포츠 활동을 극렬하게 반대하던 가족들 등 스포츠 참여 여성 주위의 많은 사람들 역시 시간이 지나며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고 해요. 남성 선수들은 여성을 동등한 팀원으로서 존중하게 되었고, 가족들은 여성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었어요. 여전히 젠더 규범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거든요. VIDA 내에서 남성 코치들은 여성 선수들에게 경기장에서는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 즉 남성적인 플레이를 펼치라고 강조했지만, 반대로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숙녀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해요. 스포츠를 통해 여성들이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장려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에게 기존의 사회적 기대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던 거예요. 더불어 여성을 동등한 선수로 인정하는 남성 선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일부 남성 선수들을 여성 선수들을 경기장 내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랐어요. 경기를 하지 않을 때는 여성 선수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는 등 은연중에 여성 선수들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모습도 발견되었어요.

그리고 콜롬비아 사회 전체에서 볼 때도 여성 스포츠는 아직 완전히 받아들여지지는 못한 상태라고 해요. VIDA를 떠난 후에도 계속 운동을 지속하는 여성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으며, 결혼 및 가정,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다시 전통적인 젠더 역할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러한 현상은 남성과 여성의 스포츠 참여율 차이가 뚜렷하고, 특히 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격차가 더욱 심화된다는 글의 앞부분에 제시된 한국의 상황과도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콜롬비아 여성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며 분명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였지만,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여전히 전통적인 젠더 규범이 강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여요.

📌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먼저 여성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축구, 농구, 야구 등 전통적으로 남성이 하는 스포츠로 여겨지는 종목에 대한 여성의 접근성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성별 구분 없이 아예 남성과 여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혼성 스포츠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예요.
• 더불어 콜롬비아의 VIDA 사례와 한국 사례 모두 청소년기 이후 여성의 스포츠 참여율이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여성이 삶에서 쉽게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마련된다면 성년기 이후로도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겠어요. 직장 내 여성 스포츠 동아리, 지역 생활체육의 스포츠 프로그램 확대 등이 그 구체적인 방인이 될 수 있겠죠.
•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성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일 거예요. 이 인식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며 꾸준히 축적되어 나가기에, 어린 시절 학교 교육에서부터 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힘쓴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누구나 성별에 상관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교육 현장에서 심도 있게 가르쳐 준다면 이런 인식을 개선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더불어 오늘날 한국 학교 체육 시간에 여학생들이 체육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모습들은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예요. 이러한 여학생들이 체육 수업에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