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어릴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과학자? 선생님? 연예인?

요즘 초등학생들의 인기 장래희망중 하나로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유튜버나 인스타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유명세를 얻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죠.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직업입니다.

인플루언서들이 행하는 노동을 ‘디지털 노동’이라고 명명해볼까요. 우리에게 친숙한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하고, 구독자들과 상호작용하고, 그 과정 속에서 광고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노동은, 고용계약에 따른 임금노동과 달리 개인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번 폴리버리레터에서 살펴볼 논문은 전통적인 노동 시장 내에서 주변화되어온 ‘여성의 일’이 디지털 미디어 기술 경제의 수익구조 내에서 어떻게 포섭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디지털노동'의 의미

근대 이후의 자본주의적 노동시장, 즉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노동 시장은 상품 생산을 위한 임금 노동이 중심입니다. 이러한 노동환경에서는 일반적으로 명확한 고용-피고용 관계를 갖고, 일상적인 영역과 노동의 영역이 비교적 쉽게 구분됩니다.

이와 달리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펼쳐진 디지털 노동시장은 일상과 노동 영역에 대한 구분이 흐려집니다. ‘일상 브이로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떠올려볼까요? 이들은 개인의 자아 및 일상, 관계 전반이 노동의 자원으로 동원될 뿐 아니라, 이 과정 전체를 능동적·자발적으로 조직·경영·관리하는 주체입니다. 따라서 특정 회사와의 고용계약이 필수는 아닙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기표현을 통해 유명인이 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죠.   

주목할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환경에 따라 노동이 재구조화되는 한편,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구분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의 구분은 생각보다 흐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디지털 노동 환경 속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생산해낼 수 있는 환경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노동의 장이 펼쳐짐에도 여전히 ‘젠더화된’ 관점과 분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성의 디지털노동

‘여성’의 일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전통적인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일은 주변화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고용 계약에 따른 임금노동 이외의 다른 노동들은 경제활동의 주변으로 밀려나게 됐죠. (ex. 여성의 재생산 노동)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과 관련되거나, 일상과 사적 세계 전반에 관련된 일들, 가사와 돌봄, 섹슈얼리티, 그리고 외모관리와 같은 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전통적인 노동시장 내에서는 대게 중요하지 않은 것,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일들은 디지털 기술 경제 수익구조와 만나며 다른 맥락에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여성’의 일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을까요?

💡 '맘 인플루언서'의 등장

요즘은 맞벌이가 필수라고 하죠. 오늘날 맞벌이가 당연해진 상황에서도 가사와 돌봄의 주요 책임은 여성들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디지털 노동의 등장은 기혼 여성들에게 새롭고 매력적인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데요.

기존에 무임금 노동으로 취급되던 가사·돌봄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자기 브랜딩 노동과 결합하여 ‘맘 인플루언서’가 등장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어머니 혹은 주부로서의 경험과 일상을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상호작용하며 자기 브랜드를 구축해가는 것이죠. 특히 일상적인 어머니와 주부의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브랜드 가치는 차별화된 신뢰도와 진정성을 확보합니다. ‘맘 인플루언서’만의 마케팅 파워는 단지 여성들이 가사 육아 돌봄 산업의 대상자가 아닌, 일종의 ‘협업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맘 인플루언서 노동은 실제로 새로운 여성 일자리로 부상하며 경쟁 역시 치열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캠bj', 디지털화된 성적노동

자본주의 역사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 임금 노동자의 재충전 및 인구 재생산을 위한 노동 (페데리치, 2013) 혹은 이성애 연애 및 결혼이라는 사적 관계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되는 일로 여겨져 왔습니다. 성행위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매춘노동의 경우, 공식적인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 경제는 성적노동을 전사회적으로 확산할 뿐 아니라, 개인이 주체성을 갖고 수행되는 것으로 재구성합니다. 이른바 ‘여캠bj’가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합니다. 이때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단지 특정 기업이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팬덤을 보유하는 방송인으로서 자기 지위를 구축하고, 수익을 획득하기 위한 자원입니다. (성상품화에 대한 비판은 제쳐두고, 성적노동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해봅시다.)

이러한 새로운 디지털 노동은 1인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상에서 새로운 여성 일자리로 확산 중입니다. 여캠 노동의 수익에 대해 ‘불로소득’이라는 오명이 있지만, 사실 이들은 1인 제작자로서 자신의 전략을 수립하고 연출하고,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셀링 포인트를 개발하는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 '뷰티 크리에이터', 사적영역과 창의성의 결합

외모와 육체를 아름답게 가꾸고 단정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여성성을 띄는 일로 여겨져왔습니다. 동시에 경제적 가치의 생산보다는 여가적인 행위에 가까워보였죠. 한편으로는 고용 및 노동과정 전반에서 암묵적으로 요구되어왔지만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자기계발로서의 외모관리 담론이 보편화된 이후에도 여성들은 외모를 관리하되, 그것을 너무 드러내어서는 안된다는 모순적 요구를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에게 외모관리는, 사적 영역에서 교묘히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었죠.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이러한 여성들의 외모 관리가 사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노동의 기회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여성으로서 개인이 습득, 축적해온 외모 관리의 경험과 지식, 기술, 노하우들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은 ‘뷰티 크리에이터’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됐죠. 이들은 기존의 화장품 판매원 혹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는 달리 특정 기업이나 매장에 고용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미디어 제작자로서, 1인 기업가로서 자기표현을 통한 노동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뷰티 산업의 소비자를 넘어, 일상적인 외모관리와 창의성이 결합한 새로운 노동 장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 새로운 노동형태, '젠더'에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