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대선이 다가옵니다. 거리마다 포스터가 붙고, 뉴스에서는 후보들의 발언이 쏟아지죠.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면 묻고 싶어집니다. 이번에도, 여성 후보는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걸까요? 광장의 함성 속에서는 분명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정치라는 직업의 세계로 넘어오면, 여성은 왜 이토록 드물어지는 걸까요? 왜 거리에서는 보이던 여성들이, 국회와 후보 명단에서는 사라질까요?

잠시 상상해봅시다. ‘정치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은 남성인가요? 여성인가요? 아마 많은 이들이 무의식중에 남성 정치인을 먼저 떠올렸을 거예요. 단정한 정장 차림, 또박또박 목소리를 내는 중년 남성.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 '익숙한'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자연스러운 상상 속에,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익숙함'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정치를 꿈꾸는 야망은 누구에게 허락되고, 누구에게는 막혀 있었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치적 야망의 젠더 격차를 깊이 살펴보려 합니다.

이미지 제작: ChatGPT

정치인이 되고 싶다, 그런데 왜 여자에겐 더 먼 이야기일까?

정치는 모두에게 멀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거리는, 사실 성별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도전할 만한 길이지만, 누군가에겐 아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세계가 되죠. 특히 여성에게는요. Fox와 Lawless(2014)는 미국 고등학생과 대학생 약 4,000명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남성은 여성보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답할 확률이 두 배나 높았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차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0대 후반, 가장 상상력이 넓어질 시기부터 이미 격차는 존재했습니다. 여성도 정치에 관심이 있습니다. 투표를 하고, 뉴스를 보고, 사회 문제에 분노합니다. 그런데 유독 "정치인"이라는 꿈을 품고 스스로를 대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정치적 야망은 개인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길러지고 억눌리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Fox & Lawless, 2014) 저자들은 정치적 야망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길러지는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여성은 정치적 야망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정치가 '자연스러운' 진로처럼 느껴지고, 누군가는 정치가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처럼 느껴지도록 사회는 반복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왜 여성은 정치를 꿈꾸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여성은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는가?"

💡 정치적 야망은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Fox와 Lawless는 정치적 야망이 선천적 성향이 아니라, “사회화의 산물”, 사회적 환경이 만드는 결과라고 강조합니다. 이 감정은 특히 다음 네 가지 경로를 통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부모나 주변인의 격려가 원인이에요. 남성은 어린 시절부터 "리더십 있다", "정치에 잘 어울린다"는 격려를 받습니다. 여성은요? "조심해라", "너무 튀지 마라", "정치는 거칠다"는 메시지를 훨씬 더 많이 듣습니다. 이 조용한 기대치가 정치적 꿈을 규정짓습니다. 둘째, 정치화된 교육과 정보 노출도 원인 입니다. 학교 수업과 교과서 속 정치인은 대개 남성입니다. TV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적 토론의 주체도 대부분 남성이죠.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무의식적 메시지가 끊임없이 주입되는 셈입니다. 셋째,  경쟁적 활동의 경험도 큰 영향을 줍니다. 토론대회, 학생회 선거, 스포츠 경기 등.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주장을 펼치고 경쟁하는 것은 정치적 야망을 키우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여성은 어릴 때부터 "조율자"나 "서포터"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주도권을 잡는 법을 배울 기회 자체가 적습니다. 넷쩨,  자기 효능감의 차이가 커요. Fox와 Lawless는 여성 청소년들이 자신을 "정치할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능력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는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정치는 "될 수 있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한국의 현실: 정치의 문턱은 왜 여전히 높을까?

이렇듯 정치적 야망의 젠더 격차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이 더 심화된 상태일지도 모르죠. 송태수·양민석(2014)은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이 더 적은 이유를, 교육·정당 구조·사회문화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합니다. 첫째,  교육 접근성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정치 교육은 대체로 '특정 조건'을 갖춘 여성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수도권에 거주하고, 정당 경험이 있거나, 이미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확보한 중장년 여성들. 그래서 청년 여성, 비정규직 여성, 지역 여성은 정치 교육에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정치를 꿈꿔볼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교육이 '엘리트 양성'에 집중될수록, 정치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집니다. 정치야말로 가장 보편적이어야 할 영역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입니다.

둘째,  정당 구조와 후보 선발의 불투명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당들은 겉으로는 여성 후보 비율을 늘리겠다고 공언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역구 선거에서 여성 후보를 세우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 여성은 '비례대표'를 통해 국회에 진입합니다. 그러나 비례대표는 임기 안정성이 낮고, 정당 내부 권력 투쟁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정당 조직 내 문화 또한 여전히 남성 중심입니다. 회식 문화, 군필자 중심 네트워크, 복잡한 일은 남성이' 처리하는 인식 등. 이 모든 것이 여성 정치인의 정치 경로를 좁혀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 낙인과 기대가 크죠. 한국 유권자들은 여성 정치인에게 '가정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기대합니다. 반면, 남성 정치인에게는 결단력, 추진력 같은 전통적 리더십을 기대하죠. 이중 기준은 여성 정치인을 끊임없이 억압합니다. '야망 있다'는 이유로 비호감을 사기도 하고, '가족을 등한시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정치인이기 전에 '완벽한 여성'이어야 하는 부담. 이것이 여성의 정치적 야망을 꺾습니다.

💡  '정치인감'이라는 말에 숨어 있는 평가?

우리는 "정치인 같다"는 말을 쉽게 하죠.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무의식이 숨겨져 있을까요? Fox와 Lawless는 말합니다. "야망은 누군가에게는 허락되고, 누군가에게는 제한된다." 정치인은 남성적 특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문화적 전제가 정치적 야망의 성별 격차를 만든다고 분석합니다. 사회는 남성에게 리더십을 당연한 듯 부여합니다. 반면 여성은 야망을 드러내는 순간 "이기적", "튀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남학생이 토론을 주도하면 “리더십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학생이 똑같이 하면 "도드라진다"는 말을 듣습니다. 경쟁에 나서는 남성은 "야망 있다"는 칭찬을 듣고, 여성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정치적 리더십에 요구되는 덕목들이 '남성적'이라 여겨지면서, 여성은 애초에 '정치인'이라는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간주되는 것이에요.

이런 이중 기준은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송태수·양민석(2014)은 한국 여성 정치인들이 선거 과정에서 여전히 기혼 여부, 가정생활, 외모 등 정치와 무관한 기준으로 평가받는다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유권자들은 여성 후보자에게 더 높은 도덕성과 공감력을 기대합니다. 즉, 여성은 정치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이상적 이미지"까지 충족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인 거죠. 그래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정치인다움은 정말 능력의 문제였던가? 아니면, '누구의 모습'을 기준 삼아 만들어진 편견이었는가? 정치인감이라는 말과 인상은 성별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건 남성의 몸, 목소리, 언어를 기준으로 세워진 상징입니다.

다시 꿈꾸고 상상할 수 있도록, 교육과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 굳건한 벽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Fox와 Lawless는 답합니다. "정치적 야망은 어릴 때부터 길러져야 한다." 정치를 꿈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내 삶과 연결된다는 감각을 갖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학교, 가정, 지역사회 등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심어줘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해요. 송태수·양민석(2014)은 여성 정치 교육이 단지 선거에 나갈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나의 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학교 교육 안에 정치사회학적 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합니다. 민주주의, 권력, 대표성에 대해 성별 고정관념 없이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죠. 정치 교과서에 여성 정치인의 사례를 적극 포함하고, 정치, 리더십을 '카리스마적'인 남성 이미지로만 설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돌봄, 협력, 조정 능력도 리더십의 중요한 자질임을 가르치고, 리더십의 한 형태라는 것을 강조해야 해요. 즉, 정치는 남자다라는 무의식적 편견을 처음 부터 허물어야 합니다.

또한 경쟁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쟁=공격성'이 아니라, 협상과 조정 능력도 중요한 리더십 스킬임을 가르치는 것이에요. 초등학교부터 모의선거, 모의의회, 학생회 활동을 장려해서 협의와 관계중심의 논의를 꾸릴 기회를 주어야 해요. 그리고 이 속에서 여학생이 리더가 되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과 주도권은 특정 성별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임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에요.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꺾이지 않은 말들을 위하여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의 야망이 꺾이는 장면을 봐왔습니다. 그리고 그 꺾임은 개인의 포기나 부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말할 수 없었던 구조, 허락되지 않았던 상상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는 정치를 못해."
"정치는 거친 세계야, 네가 버틸 수 있을까?"
"가정도 못 챙기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고?"

이런 말들은 때로 노골적으로, 때로 은밀하게, 여성들의 입을 막아왔습니다. Fox와 Lawless는 말합니다. "여성의 정치적 야망은 사라진 게 아니다. 시작되기도 전에 꺾였을 뿐이다." 송태수와 양민석도 이야기합니다. "여성 정치 교육은 소수 엘리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문을 여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 여성은 정치를 하지 않는가?" 가 아니라, "왜 우리는 여성에게 정치를 꿈꿀 수 있는 언어를 가르치지 않았는가?" "왜 여성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허락받지 못했는가?" 정치란, 결국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다양한 사람들이 정치라는 무대에 설 수 있어야 진짜 민주주의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를 다시 상상해야 합니다.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돌봄과 공감의 언어로. 지배의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되는 공간으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의 야망도 꺾이지 않는 사회를 위해, 지금,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당신은 왜, 정치를 꿈꾸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제, 당신은 어떤 정치를 꿈꾸고 싶나요?

이 질문에 답하는 일,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넓고 깊게 만드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정치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일이라는 말처럼, 당신의 야망과 상상을, 이제부터는 누구도 꺾을 수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