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브리’ 그림체가 SNS를 점령했었죠. 너도나도 챗 지피티의 생성 기능을 활용해 사진을 원하는 그림체로 바꾸는 것이 유행했었는데요. AI 기술의 활용은 이제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은, 누군가에겐 재미나 창작이 아닌 공포와 폭력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몇 번 클릭만으로 당신의 얼굴이 낯선 몸에 덧씌워지고, 포르노 영상 속 주인공이 됩니다. 그 결과, 누군가는 현실에서 직장을 잃고,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바로 딥페이크 성범죄 이야기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현행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법 제도가 놓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보려 합니다.

이미지 제작: ChatGPT

기술발전과 성범죄

AI기술의 발전과 함께  ‘딥페이크’ 기술이 새로운 성범죄의 수단으로 떠올랐습니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면 누구나 얼굴 합성, 영상 조작을 쉽게 할 수 있는데요. 이에 실제 인물의 사진을 성적 이미지와 합성해 유포하는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의 얼굴까지 도용되어 성적 이미지로 재가공되고 있는 것이죠. 이런 범죄는 단순한 '기술 오용'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소비하고 통제하려는 오래된 성차별 문화가 디지털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 디지털 성범죄 vs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

우리에게는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를 두고 ‘디지털 성범죄’라고 명명하는 것이 익숙할 겁니다. 그런데 저자는 저자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문제를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Technology Facilitated Gender Based Violence)의 맥락에서 살펴볼 것을 제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디지털 ‘성범죄’라는 명명은 그 의미를 단지 법적인 범죄 구성 요건으로만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를 볼까요?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8. 12. 18., 2020. 5. 19.>

해당 법조항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부위”와 같은 표현으로 범죄의 구성요건을 한정하고 있는데요. ‘디지털 성범죄’라는 표현은 법 조항의 의미 내에서만 인식하게 함으로써 ‘성범죄’를 넘어 젠더 기반의 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놓치게 된다는 문제가 있어요. 따라서 이러한 딥페이크 범죄를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에서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의 개념으로 확장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Technology Facilitated Gender Based Violence)은 유엔인구기금(UNPFA), 유엔 여성(UN WOMEN) 등의 국제기구에서 사용하고 있고, 여러 해외 연구자들도 다양한 연구 맥락에서 활용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법으로 규정된 성폭력 범죄를 넘어 허위 정보 및 명예 훼손, 사이버 괴롭힘, 혐오 표현, 개인 사칭, 스토킹 등 기술을 사용하여 온오프라인에서 젠더를 이유로 일어나는 폭력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현행 법제도가 놓치고 있는 것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사회는 분노하고, 국회는 형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실제로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 처벌 법안이 강화되었고, 딥페이크 제작·유포 역시 처벌 대상에 포함됐죠.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우리 현행 제도가 젠더 폭력의 성차별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 '성적대상화 되지 않을 권리'

저자는 법제가 ‘성적 대상화되지 않을 권리’ 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성의 성적 인격권을 인정하고 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성적 괴롭힘과 성적 대상화를 제대로 규제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적 대응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신체 부위의 노출에 국한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권리와 존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성적 대상화를 막는 것 뿐만 아니라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 개념을 법제화함으로써 발전하는 기술이 누군가의 인격을 파괴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와 함께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과 일상적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성적 이미지의 자동 탐지 및 삭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소비자들 또한 딥페이크 성적 콘텐츠를 향한  사회적 비판 여론 형성을 통해 자율적인 자정작용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클릭하고, 공유하고,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의 인격을 침해하는 구조에 참여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