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여주가 여신이라면??

여러분은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TV 만화영화 <캐치! 티니핑> 시리즈, 극장판 영화 <퇴마록(2025)>, <사랑의 하츄핑(2024)> 등이 인정을 받으며 한국 애니매이션 시장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요. 이런 애니메이션을 단순한 판타지나 오락거리로 생각하고 지나가기에는,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생각보다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담고 있답니다. 

이번 폴리버리 레터에서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에 주목하여 여성 캐릭터들을 '여신 원형(Goddess Archetypes)'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신카이 마코토. 2023. 『스즈메의 문단속』. 일본: 코믹스 웨이브 필름. (포스터 출처: ㈜쇼박스 / 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일본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 여신과 닮았을까?

💡 성장하는 여성, 페르세포네

가장 다양한 장르에 등장한 원형은 페르세포네 원형이었어요. 페르세포네는 풍요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지상에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다가 죽음의 신 하데스에게 돌연 납치당해 그의 아내가 되어 지하 세계의 여왕이자 봄의 여신으로 살아가게 되죠. 이 서사 자체가 소녀에서 성숙한 여성으로 변화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어요. 슈미트도 페르세포네 원형을 처음에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에서 시작해, 점차 성장하여 자아를 찾고 내면의 힘을 키워가는 이야기로 설명하죠.

페르세포네 원형은 어드벤처, 판타지, 로맨스, 가족, 드라마 등 여러 장르에 고르게 나타났고, 이들 작품은 모두 변화, 성장, 재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어요. 이야기가 전개되며 갈등과 부딪힘을 겪다가 결국에는 내적으로 성장하고, 이전에는 꺼렸을 선택지인 모험하고 도전하는 것을 선택하는 거죠.

연구에 따르면, 모험적인 여신 원형은 최근 애니메이션에서 더 많이 등장했다고 해요. 이것은 비단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만이 아닐 수 있어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착한 딸’이나 ‘누군가의 연인’으로 대표되던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죠. 감정, 진로,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설계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페르세포네처럼 낯선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며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과 닮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의 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신화적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 같은 듯 다른 두 모성(母性), 데메테르와 헤라

데메테르 원형 역시 분석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한 유형이었는데요, 데메테르는 그리스 신화에서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이자 풍요와 곡식의 여신으로, 모성애를 상징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서 모성을 상징하는 여신은 헤라도 있는데, 분석 작품에서 데메테르 원형이 헤라 원형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이 사용된 것은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는 두 원형이 유사한 모성적 특성을 가지면서도 보살핌의 방향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어요. 헤라가 주로 ‘아내’로서의 정체성에 중점을 두고 결혼과 배우자 관계에 대한 충실함을 보여준다면, 데메테르는 자녀나 타인, 공동체를 향한 포괄적 돌봄과 양육의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여성 캐릭터가 꼭 누군가의 아내로 한정되지 않고, 독립적인 보호자나 공동체의 책임자로서 묘사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제공하죠. 이 점에서 데메테르 원형은 다양한 장르에서 유연하게 활용되며, 동시대 여성상과도 더 잘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어요.

💡로맨스 속에만 나오는 고독한 여신??

여성 캐릭터들에게 동원되는 여신 원형은 대체로 장르별로 차이가 있었는데요, 판타지 장르에서는 어러움에 맞서는 모험적·독립적 여신 원형이 많이 활용된 반면, 로맨스 장르에서는 헌신적·보호적 이미지를 가진 여신 원형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중에서 로맨스 영화에만 등장하는 여신이 있었는데, 바로 헤스티아 원형이었어요. 헤스티아는 가정과 벽난로의 여신인데, 내면의 평화와 고요한 일상을 추구하는 인물상으로, 연구에서는 헤스티아 원형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은 고독하고, 고립된 모습을 보여 로맨스 관계로 이어지는 남성 캐릭터 외에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고 해요. 이러한 경향은, 로맨스 장르 안에서 여성 캐릭터의 사회적 관계나 자율성보다는 이성 간의 관계에만 정체성을 집중시키는 제한된 서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여성만이 영화 같은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여전히 사회적으로 유효한 기준처럼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스크린에서 배제된 주체적인 여성들

📌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애니메이션은 과장된 이미지와 상징을 담은 시각적 서사를 제공해 일반 대중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자아가 확고하게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 및 청소년은 애니메이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버릴 가능성도 크죠. 이들이 접하는 애니메이션에 특정 젠더의 캐릭터가 제한된 역할을 반복할 때, 혹은 특정 젠더 정체성이 과도하게 이상화될 때, 해당 이미지는 사실상 '이상적 여성상'이나 '이상적 남성상'으로 작동하게 될 거예요. 이는 향후 자아 정체성과 젠더 감수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행한다면, 이들이 미디어를 해석하는 눈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시각을 갖게 될 수 있겠죠.

• 또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 점차 성장하고 있는 만큼, 제작 초기 단계부터 다양한 여성 캐릭터와 젠더 정체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인이 마련된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현재 어린이 대상 국산 애니메이션에서는 여전히 착하고 예쁜 공주형 캐릭터가 중심을 이루고, 갈등을 주도하거나 독립적인 목표를 가진 여성 캐릭터는 좀처럼 보기 어렵죠. 이런 경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콘텐츠 지원 사업에서 젠더와 다양성 기준을 심사 항목에 포함하고, 이를 충족하는 기획안에 가산점이나 예산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