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과 비전형의 함정

“가슴이 답답해요.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아요.” 서울의 한 응급실,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호사는 환자를 들것에 눕히고 혈압과 심박수를 측정했지만, 가슴 통증은 없다고 하니, 의사는 위장관 질환부터 의심했습니다. 심전도와 심근효소 검사는 뒤로 밀렸습니다. 몇 시간 뒤,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녀는 급성심근경색으로 확진됐습니다. 치료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드물까요? 아닙니다. 심혈관질환 환자를 매일 보는 의사들은 잘 압니다. 남성 환자 데이터를 토대로 만든 진단 틀 속에서 여성 환자의 신호는 자주 ‘비전형’이라는 이름으로 뒤로 밀린다는 사실을요.

이 환자의 사례는 의료현장에서 흔히 발생합니다. 의사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진단 체계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 교과서는 심근경색의 전형적 증상을 이렇게 씁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흉통” 하지만 이 기준은 수십 년간 남성 환자 관찰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여성은 같은 병이라도 다르게 아픕니다(Paller, C. J.et al.,2009). 흉통 대신 체한 듯한 불편감, 구토, 목·어깨의 묵직함,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죠. 하지만 이런 신호는 진단 지침에서 주요 지표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여성 환자의 진단은 늦어지고, 치료가 늦어지면 합병증과 사망 위험이 높아집니다.

박성미 고려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여성의 심혈관질환 진단은 남성보다 평균 7~10년 늦다. 국내 조사에 따르면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여성의 평균 나이는 남성보다 10년 높으며, 입원 당시 상태도 더 위중하다”고 지적합니다(동아사이언스, 2025). 진단 지연은 단순한 의료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가 늦어질수록 사망률이 높아지고, 회복 이후에도 합병증과 삶의 질 저하가 뒤따르죠. 이렇듯 여성의 증상이 ‘비전형’이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오랜 세월 남성을 표준으로 삼아온 의학의 역사와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출처: Grey’s Anatomy, Disney+

여성의 몸은 남성과 다르다

여성과 남성의 몸은 해부학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여성은 심장이 작고, 관상동맥 직경이 좁습니다. 따라서 병이 진행되는 방식도 다릅니다. 남성은 흔히 죽상반 파열로 혈관이 막히지만, 여성은 내피세포 침식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물 대사와 부작용 양상도 성별에 따라 다릅니다(Mehta et al., 2016). 심장 박동수를 낮추는 베타차단제의 경우, 남성은 권장 용량 100%에서 가장 효과가 크지만, 여성은 절반 용량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진료 지침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에 따른 대가는 환자, 특히 여성 환자가 치르게 됩니다.

💡 여성은 왜 '비전형'이 되었나

문제의 뿌리는 진료실이 아니라 연구실과 회의실에서 시작되었어요. 첫째, ‘태아 보호’ 명목의 배제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의학계는 두 가지 사건을 겪으며 여성, 특히 가임기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를 제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탈리도마이드와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 사건이이었죠. 1960년대 초반의 탈리도마이드는 입덧 완화제로 처방되던 약물이었지만 수천 명의 기형아 출산을 초래했습니다. 또 유산방지약이었던 합성 에스트로겐 디에틸스틸베스트롤은 여성과 그 자녀에게 암과 생식기 기형을 유발하고 말았죠. 결국 이 사건들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을 연구에서 배제하는 명분이 되었어요. 197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가임기 여성은 1·2상 임상시험에서 제외한다’는 지침을 발표했어요. 표면적인 이유는 태아 보호였지만, 실제로는 여성 전체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죠. 이 결정으로 인해 실제로는 여성 데이터 공백을 제도화하고 말았어요.

연구자들은 변동성이 적고 관리가 쉬운 남성을 선호했고, 남성 데이터가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진단과 치료 기준이 되었습니다. 여성은 생리주기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연구 결과가 ‘변동성이 크다’고 여기는 시각이 생겼고, 연구자들은 통계적 해석이 더 간단하고, 관리하기 쉬운 남성 피험자를 선호했어요. 이렇게 해서 남성의 신체가 ‘보편적 인간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생산된 데이터와 기준이 ‘다시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점이죠.

여성 배제는 임상시험 이전 단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암컷 실험동물은 발정주기 때문에 복잡하다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세포 실험에서도 세포의 성별을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후속 메타분석에서는 오히려 수컷의 변동성이 더 크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수컷 중심의 연구 관행은 바뀌지 않았죠. 결과적으로, 의학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여성은 연구에서 ‘변수’ 혹은 ‘위험요인’으로 간주되며 주변부로 밀려났고, 신약 개발의 출발선부터 여성의 생리와 병리가 사라졌습니다.

💡 차별의 결과: 건강 격차와 위협

이와 같은 차별은 건강격차와 위협을 초래했어요. 가장 먼저 여성의 약물 부작용의 위험이 크게 증가했죠.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1997년 이후 시장에서 퇴출된 10개 처방약 가운데 8개가 여성에게 더 큰 위험을 보였다고 결론 내렸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졸피뎀입니다. 같은 용량을 복용해도 여성의 혈중 농도가 훨씬 높게 유지된다는 사실이 판매 후 데이터에서 확인됐습니다. FDA는 2013년에야 여성 권장 용량을 절반으로 낮췄습니다.

다음으로 진단 지연과 오진도 발생했죠. 서두에서 다룬 것처럼 심혈관질환, 뇌졸중, 자가면역질환 등에서 여성 특유의 증상이 진단기준에 포함되지 않아 발견이 늦어집니다. 예를 들어, 여성의 뇌졸중은 언어장애보다 두통이나 의식 저하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지만, 표준 진단 알고리즘에서는 이를 주요 지표로 보지 않고 있어요.

이는 결국 의료 현장에서의 차별로 이어졌어요. 심혈관질환자들의 인구적 특성을 다룬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심근경색 첫 발병 시점이 남성보다 평균 7~10년 늦습니다. 응급실에 올 때 더 나이가 많고, 동반질환도 많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미국 심장협회(AHA) 자료에 따르면, 여성은 상동맥조영술·중재시술·퇴원 약물처방 등 표준 처치를 남성보다 덜 받습니다. 한국 조사에서도 관상동맥조영술 시행률은 남성 63.2%, 여성 39.8%로 나타났습니다 (최보영, 2021). 이는 여성의 증상이나 해부학적 차이, 질병 발생 양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발생한 정보의 공백을 ‘여성은 덜 아프다’고 오독한 결과인 것이죠. 이렇듯 여성의 질병, 약물 임상에 대한 공백은 오래된 인식과 맞물려 치료 접근성의 격차를 키워왔습니다.

여성 의료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변화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자. 1980년대 후반, 미국 공중보건서비스 여성건강 태스크포스는 경고했습니다. “의학에서의 여성 배제는 여성 건강 지식의 공백을 만든다.”라고 말이에요. 이후 199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NIH Revitalization Act’를 통해 NIH 자금이 투입되는 임상시험에 여성과 소수자의 참여를 의무화했어요. 같은 해 FDA도 가임기 여성 배제를 철회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신약허가 신청서(NDA)에 성별·연령·인종별 하위군 분석이 의무화됐고 이로 인해 분석이 부실하면 심사가 거부됩니다. 2016년부터는 SABV(Sex as Biological Variable) 정책을 시행하여 연구 설계, 분석, 보고 전 과정에서 성을 생물학적 변수로 반영하도록 했죠.  2009년 SGBA Plus(Sex- and Gender-Based Analysis Plus) 정책을 도입해 인종·연령·사회경제적 배경과의 교차성까지 반영하도록 했던 캐나다 보건연구소와 Horizon Europe 프로그램에서 젠더평등계획(GEP) 수립을 모든 참여기관에 의무화했던 유럽까지(Geller et al., 2011). 이미 해외에서는 여성의 임상참여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듯 임상에서의 여성 참여율은 늘었지만, 분석과 보고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2011년 주요 의학저널 논문 64%는 결과를 성별로 나누어 보고하지 않았고, 심혈관질환 연구에서도 여성 표본이 적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분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BMC Women’s Health, 2015). 여성이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합니다. 과거 비윤리적 연구로 인한 불신, 돌봄·가사 부담, 교통과 거리 문제, 검사와 방문의 피로, 경제적 제약 등이 있죠. 이는 여성의 시간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과도 맞닿아 있어요. 이에 FDA와 NIH는 교통비·보육비 지원, 유연한 방문 시간, 지역 커뮤니티를 통한 맞춤 홍보 등으로 이를 줄이려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했어요.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설립,병원 내 성차의학 연구소 개소, 국립보건연구원의 K-STAR 프로젝트 착수등, K-STAR는 심혈관·소화기 질환의 성차를 분석해 진단·치료 지침 개정으로 연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성별 분석 의무화, 평가 체계, 연구자 교육, 데이터 공개, 대중 인식제고 등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에요.

📌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호르몬이 복잡하다는 말은 곧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의미에요. 생물학과 편향이 얽힌 문제라면, 우리는 둘 다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체크리스트와 알고리즘이 달라지면, 바쁜 와중에도 다른 선택을 “덜 힘들게” 할 수 있어요. 품질지표와 인센티브는 그 선택을 덜 위험하게 만들어요. 여성의 증상을 표준의 언어로 번역해주지 못하는 시스템이 문제이기 때문이죠.

• 흉통이 없다는 이유로 심전도를 늦게 찍고, 비전형 증상이라는 이유로 심근효소 검사를 뒤로 미루는 것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 곧 어떤 신호를 먼저 믿을지를 결정하는 권한의 문제에요. 그래서 해결책도 권력의 재배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연구비와 심사, 가이드라인과 교육에서 “성·젠더를 분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다”는 강제성을 명문화해야하는 것이죠. 미국이 1993년 법으로 “여성과 소수자를 포함하라”고 못 박고, 2016년에 SABV로 “두 성을 기본값으로 연구하라”고 요구했을 때 변화를 만든 힘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였으니까요.

• 뿐만아니라 우리는 의과대학·전공의 교육과정에 성차의학을 필수화하고, 임상의의 지속교육을 시행해야 해요. 그리고 연구의 설계를 키워야해요. 표본수 산출부터 “성별 하위분석”을 전제로 잡는 예산과 시간을 배정하는 등(Baggio et al.,2019). 임상시험 설계에 여성 참여에 장벽을 만들 수 있는 요인을 분석하여 돌봄·교통·시간·피임·임신 안전성 항목에 대한 관심과 개선이 반드시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