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판결기준 #강제보다 동의 💌 폴리버리 레터는?
-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와 함께 발행합니다. 여성과 일, 그리고 더 나은 노동시장을 위한 고민을 담은 논문들을 달마다 키워드로 묶어 전해드려요.
- 폴리버리 레터는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 오전 8시에 발송됩니다. 월요일이 다섯 번 있는 달에는 세 번째, 다섯 번째 월요일에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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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폭력 #피해자 #판결 #강제보다 동의
- 나를 강간하려고 한 사람의 혀를 깨물었다고 내가 가해자가 된다고?
- 재판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 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강압이나 상처가 필요하다?
- 피해자의 상처는 재판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 또 다른 최말자 씨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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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강간하려고 한 사람의 혀를 깨물었다고 내가 가해자가 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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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처벌받았던 최말자 씨를 아시나요? 2025년 9월 10일, 최말자 씨는 61년만에 재심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드디어 무죄를 선고받았어요. 1964년 5월 6일 만 18세였던 최씨는 강제로 키스를 시도한 노씨에게 맞서 혀를 깨물었는데요, 당시 검찰은 혀 절단으로 노씨가 불구가 됐다며 최씨에게 중상해죄를 적용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어요. 혀가 잘린 노씨는 이후 최씨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보상하라며 최씨와 최씨의 가족을 위협했는데, 이로 인해 노씨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어요. 노씨는 성폭력으로 처벌받지도 않았고, 최말자 씨보다도 적은 형량을 받은 거예요.
당시 재판에서는 “처녀가 범행장소에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갔”으므로 강제성이 없었다, “범행 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위에 들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당황하거나 괴로워하는 표정이 없는” 등 ‘피해자다움’이 부족했다는 판결이 이뤄졌어요. “험한 꼴을 당한 여자나 불구가 된 남자나 결혼하기 어려울 것이니 둘이 결혼하면 되겠다”는 변호인의 2차 가해까지 일어났지요. 이 때 최씨가 노씨의 성행위에 대해 동의를 했는지 아닌지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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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피해자다움이란?
성폭력 피해 이후 피해자가 '피해자다운' 모습, 반응, 태도를 보일 것을 기대할 때 쓰는 말이에요. 성폭력이 일어날 때 즉시 저항한다거나, 사건 직후 신고한다거나, 피해에 대해 주눅이 들거나 슬퍼보인다거나 등의 기대가 포함됩니다(허민숙, 2017). 피해자는 "약할수록, 당시 도덕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고 여겨질수록, 위험회피 노력을 했을수록, 가해자와 전혀 모르는 관계일수록, 가해자가 완력이 세고 악한 사람일수록 그 피해자는 이상적으로 여겨집니다(경향신문, 2020.11.17.)." 그러나 대법원은 2020년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상황에 따라 대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함부로 특정한 피해자다움을 전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중앙일보, 2020.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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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말자 씨는 56년동안 이 사건에 대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다가 2018년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이 일어나자 용기를 얻고 재심을 요청하기로 결심했어요. 1964년의 성폭력 피해 상황을 기억해내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요. 다행히 오늘날 최말자 씨의 행위는 성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로 인정되었습니다.
최씨 변호인단의 김수정 변호사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인 사건인데, 성차별적인 편견으로 인해 잘못된 판결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어요(연합뉴스, 2025.9.10.). 그렇다면 이제는 성폭력 사건을 재판할 때, 성차별이 사라졌을까요? 오늘 폴리버리 레터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어떨 때 강간이 강간으로 인정되는지, 성폭력 피해는 어떻게 법적으로 입증되는지를 알아보면서 이 속에 숨겨져있는 성별 고정관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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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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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 강제를 기준으로 하느냐, 동의를 기준으로 하느냐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다시 말하면 가해자의 강제와 강압으로 인한 성관계였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 있고, 상대방의 동의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제일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 있다는 말이에요. 강제를 기준으로 보는 관점은 가해자가 압력을 행사했고, 그 폭력에 피해자가 저항했으며,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 전제해요. 왜냐면 여성은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에요. 피해자가 입은 상처, 성폭력으로 인한 수치심을 강조하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는 성폭력으로 인해 신체적,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었고 수치심을 느꼈음을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성폭력 피해가 법적으로 인정이 됩니다. 이런 기준은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한국에서 통용되는 관점이에요.
피해자의 동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관점을 채택하는 나라는 영국, 스웨덴, 캐나다 등이 있어요. 이 관점에서는 가해자의 강제성이 있었는가,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는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루밍 성범죄와 같이 생존하기 위해서, 두려워서 피해자가 억지로 동의를 한 경우를 성폭력으로 포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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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강압이나 상처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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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는 성폭력 범죄를 판결할 때 동의보다는 강제를 기준으로 삼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냐구요? 가해자의 강압과 강제가 있었을 때 성폭력 유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 피의자가 피해자를 심하게 공격했을수록 징역의 길이가 더 길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피해자의 부상이나 상처는 어떨까요? 피해자의 신체적, 정신적인 상해 수준이 심해질수록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로 이어졌습니다. 저자는 강간 범죄로 부상을 입었을 때, 가해자에 대해 더 강한 처벌과 배상금으로 이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강제를 기준으로 판결이 이뤄질 때,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피해자의 부상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우려합니다. 재판에서 판사들은 피해자의 상처를 강간의 증거로 예상하고, 더 나아가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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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성폭력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의 판결문 분석을 통해서 피해자의 부상이 성폭력 판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먼저 피해자의 신체에 부상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면 법원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강간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가해자가 심한 폭력을 가하고 피해자가 그에 저항하며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판결문을 살펴보니 강제력이 없었던 사건이더라도, 피해자의 상처를 전제하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성폭력 피해자답지 않은 몸? 피해자가 될 수 없는 부상?
한편, 상처를 안 받을 몸이라고 간주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피해자로 간주되기 어렵고,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가해자로 간주되기 어렵기도 합니다. 여성이 키가 크거나 체격이 크면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낮고, 강간을 피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남성의 체격이 작으면 강압이나 상처를 낼 가능성도 작을 것이라 생각하지요. 몸무게가 60kg 이상이거나, 나이가 많은 여성은 “성적으로 덜 매력적”이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기도 합니다. 또, 질의 상처는 흔히 성교에서 일어나는 상처로 간주되어 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질에 상처가 없으면 성폭력의 피해를 의심받기도 합니다. 질의 상처만으로는 상대방이 강제력을 사용했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은 성폭력 피해자로 더더욱 입증되기 힘들겠지요.
💡 '성적 수치심'을 입증해야 한다고?
성폭력 피해자가 경험하는 부상은 신체적 부상 말고 정신적인 상처도 있죠. 그런데 일관되게 성폭력 사건에서 “성적인 수치심”이 재판에서 중요한 판단 요건이 되어왔어요. 판결문에는 “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심각한 ‘수치심’과 ‘고통’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처벌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이는 성폭력임을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가 수치심 혹은 두려움을 느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피해자가 성희롱을 역겹다고만 생각하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고 답한 경우에는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기도 했어요.
저자는 강간 피해로 수치심만을 예상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피해자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제한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성적 수치심을 강조할수록 여타 다른 폭력과 달리 성폭력에는 특별히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존재’로 낙인찍을 수 있어요. 성적인 수치심을 입증해야되는 이유는 줄곧 한국 사회가 여성의 ‘순결’과 ‘처녀성’을 중요시해왔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관점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자가 순결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 순결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를 질문하면서 여성을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순결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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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강제를 기준으로 성폭력 범죄를 판단할 때, 피해자에게 신체적인 상처와 정신적인 수치심을 강요하게 될 수 있음을 보여줘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강제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피해자다움을 더 강요하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최말자 씨 사건 당시, “키스했다고 혀를 자르다니 피해자답지 않은 지나친 공격성이야, 저런 공격성이라면 성폭력 피해자라고 할 수 없어”,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니, 충분히 저항하지도 않았네”, “순순히 따라갔다니, 원했던 거 아니야?” “정절을 잃었으니 그 남자랑 결혼하는 게 낫지 않아?” 등 사람들은 최말자 씨에게 피해자다움과 순결을 강요했어요. 만약 최말자 씨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집중했다면 성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를 더 일찍이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법정에 서서 다시금 자신이 입은 피해를 설명하고 상세히 증언하는 건 힘든 일이에요. 김보화(2022)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는지, 피해 당시 저항하지 못할 만큼 얼마나 ‘연약하고’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였는지, 사건 이후로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여전히 우리는 피해자가 ‘피해자답기’를 기대하고 있고, 그 기대에 어긋나면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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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나 피해자가 입은 상처와 피해에 집중하면, “피해자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특정한 편견을 가중시킬 수 있어요. 상대방의 동의를 기반으로 판단하되, 개별 사건마다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도 2013년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련한 법이 개정되면서 강제보다는 동의를 중요시하는 관점으로 일부 변화가 일어났어요.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직접 고소 없이도 성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었고, 강간죄의 대상을 여성에서 사람으로 법이 개정되었어요. 이러한 개정은 피해자의 수치심, 취약성을 여성에게만 연결시키는 고리를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강제 기준 관점에서 동의 기준 관점으로 법이 변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상대방의 동의를 중심으로 판결하여 사회적으로 민감성을 높이는 방향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러나, 동의를 기준으로 판결하는 것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표시한 상황에서는 동의를 진정한 동의로 간주해서는 안 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모두 고려한 판결이 이뤄져야 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발생 공간, 피해 유형, 2차 피해 여부와 정도, 해결의 방법과 결과, 사건 관계자들의 역량, 피해자의 생애사적 맥락과 경험(김보화, 2022: 71)”에 따라 성폭력 사건이 다르게 구성되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 성폭력 범죄를 처벌할 때 ‘성적 수치심’보다는 ‘성적 불쾌감’으로 포괄해야 해요. ‘성적 불쾌감’이라는 용어는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 성폭력이 죄로 인정되지 않았던 경우를 지적하며 나온 대안이에요. 성적 수치심은 성범죄 피해자가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껴야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주고, 성범죄 피해자들은 공포, 분노, 비현실감, 죄책감, 무기력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므로 ‘불쾌감’이라는 더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하자는 지적이 이루어졌습니다(안재경 외, 2023).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2022년 10월에 성범죄에 대해 가중처벌 할 때에,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을 기준으로 하도록 용어를 변경하도록 했어요. 그러나 아직도 성폭력처벌법 등 법령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 앞으로 더 개정이 필요합니다.
-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형사재판에서 사건의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에요. 피해자는 방청석에 앉아있게 됩니다(한국성폭력상담소, 2024.7.29.). 필요한 경우, 피해자가 직접 재판에 참여하여 자신의 심정과 의견을 진술하고, 가해자에게 직접 질문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게 하는 ‘피해자참가제도’를 도입할 수 있어요. 이로써,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병원 방문 기록 등 의학적 진단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보다 자신의 피해를 직접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피해자의 회복은 법정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정당한 분노를 드러내고 경험을 객관화 하면서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할 때에 시작될 수 있는데(김보화, 2022),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체로 만드는 데에 피해자참가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관련 논의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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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논문 💎
Park, J. (2024). Injured and Ashamed: The Limitation of the Expanded Coercion-Based Rape Model in South Korea. Gender & Society, 38(3), 408-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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