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페미니즘 교육 #반지성주의 #반페미니즘

• 점차 사라지는 여성의 자리

•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 21세기적 반지성주의와 맞닥뜨리다

• 여성학의 정체성과 목적 그리고 강의실 안 여성학

• 반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다고지로 맞서다!

점차 사라지는 여성의 자리

이른바 진보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이번 정부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많은 여성들이 배신감과 참담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등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점차 지워나가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여성주의에 대한 이론과 실천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는 여성학 교육의 페미니스트 페다고지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엄혜진의 논문을 통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페미니즘을 위협하는 현 상황을 진단해 보고, 여성학 학계의 페다고지 계보를 짚어보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보아요.

출처: 경향신문, 2025.10. 20. “‘역차별’ 담당 부서, 성평등부 성평등정책관 ‘주무과’ 됐다”

🤚 잠깐, 페다고지란?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교육학)에서 등장한 개념입니다. 그는 책에서 ‘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사물로 전락하는 반면, 피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한 인격체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즉 학습자를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는 교육이 아닌 자유를 실천하며 현실에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주체로 길러내는 교육을 강조하였습니다. (출처 : 『페다고지』 50주년 기념판 출판사’그린비’ 서평) 여기서 나아가 페미니즘 페다고지는 학습자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학습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윤경, 2022)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 21세기적 반지성주의와 맞닥뜨리다

2016년경 등장한 ‘젠더 이퀄리즘’ 논의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페미니즘 운동을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무위키>에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가상의 사회 운동이 만들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안티 페미니즘을 지향하던 특정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서구에서 ‘페미니즘’ 대신 ‘이퀄리즘’이라는 용어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유명인이 이를 여러 번 언급해 왔다는 잘못된 사실을 온라인 상에 퍼트리며 페미니즘 운동을 방해하고자 했던 거죠. 허무맹랑한 사건이었지만, 해당 개념은 허위임이 밝혀진 후에도 현실 페미니즘 논의에 근거 없는 새로운 용어들을 유입시키고, 트위터에서 논쟁을 발생시키는 등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성과 지식(인)을 경시하는 관념 및 태도’인 반지성주의(호프스태터), 무엇이 진실인지가 중요하지 않아진 탈진실(post-truth) 시대가 도래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던 사건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반지성주의가 반페미니즘과 만났을 때 극적인 케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여성학이 제도 학문에 들어선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분과학문이자 학제간 학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으로 인해 독자적 분과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적으로 취약한 페미니즘의 위치가 반지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반페미니즘이 작동되기에 좋은 구실이 되어준 거죠. 둘째, 지성을 대중의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반지성주의의 작동 방식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로 인해 ‘평등’의 가치를 부르짖고 있는 21세기 대중의 현실을 고려하면, ‘성평등’을 위시하는 페미니즘은 너무나 좋은 표적이 됩니다. 반지성주의적 반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사상이 ‘평등’을 저해하고,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세력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 역시 반지성주의적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는데요.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로 여성들의 개별적 경험담이 단편적, 극단적, 탈맥락적으로 빠르게 유통되고, 이론과 사회운동이 서로 소통되지 못해 페미니스트 여성 내부에서 극단적인 논쟁으로 치닫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차성 담론을 둘러싼 소위 ‘쓰까’ vs ‘렏펨’ 구도) 전통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지식을 구성해 왔지만, 경험 그 자체가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성찰도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이 이 전의 고민이 퇴색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학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였습니다.

여성학의 정체성과 목적 그리고 강의실 안 여성학

여성학은 그 시작부터 단순히 학습을 위한 지식이 아닌,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실천학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학 교육 과정에 여성학이 들어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페미니즘 페다고지는 질적으로 변화는 있었지만 일관되게 반영되어 왔습니다. 1980년대에는 여성학 연구자들이 직접 여성운동 단체에 참여를 하는 방식으로 이론과 실천을 결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고, 90년대로 넘어와서는 실용성이 강조된 현실 사회를 반영해 여성학 학문의 정책적 기여를 위해 힘을 썼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어서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희롱, 성폭력이 대두되어 한 개인의 일상과 삶을 정치적으로 조명하는 운동이 부상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저항 주체들의 복잡한 층위를 주목하는 이론적 전회를 겪어왔습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신자유주의적 현실과 페미니즘이 만나 ‘자기 계발’ 담론 혹은 개인적 경험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경계하는 비판 의식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이론과 실천의 의미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성학 교육의 목적은 의식고양과 자아 성찰, 젠더 감수성으로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1960-70년대 2세대 페미니즘의 발의로 형성되었고, 그 중심에는 ‘의식고양’이 있었습니다. 의식고양은 사회에서 억압받은 여성의 경험을 발견하고, 페미니즘에 입각한 실천적 가치관을 형성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경험과 지식이 결합된 형태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근본 철학이자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지식에서 타자로 구성되어 온 여성이 스스로의 존재성을 되찾기 위해 ‘자아 성찰’해야 한다는 목표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점차 성평등 담론이 발전되면서 현대의 학습자들을 위해 보다 ‘다층적으로 젠더 관계를 바라보는 감수성’을 갖추는 것까지 하나의 목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여성학은 그간 어떻게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을까요? 저자가 발견한 여성학 교수법의 공통적 특징은 강의실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서로 공유한 경험에 대해 '공감'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여성학 교육의 교육 목적과 잘 어울리는 수업 방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칫하면 단순히 주관적이고, 감정 발산에 불과한 비생산적인 논의로 빠질 수도 있다는 위험이 공존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여성학 강의의 수강생들은 강의에서 진행된 토의의 비체계성과 저급함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학습자의 경험이나 생각이 이론적 지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끄는 교수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그저 폭로에 그치거나 페미니즘 사상의 규범적 인식으로 회귀하는 수업이 되지 않도록 성찰의 필요성 역시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반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다고지로 맞서다!

반페미니즘과 반지성주의가 고착화되어버린 시대에서 대학 여성학 교양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 평등, 시민성 등의 가치와 지성을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반지성주의 앞에서, 페미니즘 페다고지는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성을 알려줍니다.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적 지식, 즉 지식의 역사적 구성에 의문을 품고 성찰을 거듭해 온 페미니즘 학문은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외면하는 ‘행동과 실천의 지적 작용’을 꾸준히 실천해 온 학문입니다. 요컨대 여성학 페다고지를 다시 살펴보는 일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반페미니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페미니즘 내부에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한국 페미니즘의 운동사와 이론사의 최신경향을 알려주는 (질적 깊이가 보장되는) 수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이소윤, 2018: 36에서 재인용).” 본문에 등장한 여성학 강의에 대한 학생의 소감입니다.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늘어나고 있지만, ‘질적 깊이가 보장되는’ 혹은 ‘정제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부족한 현실입니다. 학계는 이러한 현실의 수요를 인지하고, 보다 전문적인 여성학 연구자 및 교원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 지성을 기반으로 한 대화를 시도해요. 여성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억압과 불평등은 이미 많은 통계와 수치로 정리되어 있어요. 일상에서 만나는 반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방향에도 지성에 기반한 비판을 지속해야 합니다. 페미니스트 여성끼리의 대화에서도 각자의 경험과 현상에 대한 단편적 감상을 넘어, 서로가 이해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건설적인 토론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된 폴리버리레터를 구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