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여성이주노동자 #이주의여성화 #인권 #젠더관점

• 인권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 ―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장에서 생각해보기

• 가부장적 국가와 글로벌 자본주의 ― 여성이주노동의 구조를 묻다

• 보편의 이름 아래 ― 젠더화 된 인권의 사각지대

• 인권을 내세우는 나라에서, 왜 그들은 보호받지 못할까

인권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

―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장에서 생각해보기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대구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이루어지던 중, 단속을 피해 숨었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경주에서 열리는 APEC 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질서 확립’을 내세우며 진행한 ‘2025년 제2차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 합동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지난해 6월 화성의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1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충분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채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일시적으로 사회의 관심을 끌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혀집니다. 게다가 이들 중 많은 희생자가 ‘여성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요?

여성이주노동자는 ‘여성’, ‘노동자’, ‘외국인’이라는 세 가지 사회적 위치가 겹친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노동시장에서 그들은 가장 값싸고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인력으로 취급되며, 사회적으로는 함께 사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의 대상에서 배제됩니다. 또한 가정과 일터에서는 성별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정책에도, 여론에도 거의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인권은 이렇게까지 무시되어 온 것일까요? 오늘은 전경옥(2016)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규범과 한국의 법·제도 속에 있는 숨겨져 있는 성차별로 인해 어떻게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출처: "대구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대책위 "책임자 처벌해야""(2025.11.05. 연합뉴스)

가부장적 국가와 글로벌 자본주의 ― 여성이주노동의 구조를 묻다

경제의 세계화와 함께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국제 이주의 절반가량이 여성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주한 여성들이 돌봄이나 가사 노동 등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온 영역에서 일하는 현상을 '이주의 여성화'라고 부릅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여성들이 갖는 일자리는 거의 불안정하고 저임금인 직업입니다. 국내 여성들이 일을 하는 동안, 가사노동과 돌봄을 외국인 여성들이 대신에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여성의 사회 참여와 경력 확장의 이면에는 다른 나라 여성들의 희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각 국가의 이러한 가부장적 환경은 여성을 차별대우 속에서 주변화시키고, 이런 분위기는 이주자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며 강자약자 구분 인식을 드러냅니다. 가부장적 국가로의 이주노동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보다는 국제적 성별분업과 빈곤의 재생산을 강화합니다. 여성들은 모국의 빈곤과 기회의 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으로 오지만, 한국에서도 또 다른 계층적·성차별적 장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싸게’, ‘더 순종적으로’ 일할 것을 요구받으며, 노동자의 권리보다 ‘감사’와 ‘인내’를 기대 받습니다. 이렇게 ‘이주의 여성화’는 ‘빈곤의 여성화’와 결합하여, 여성의 몸과 노동을 글로벌 자본주의의 최하층에 묶어두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보편의 이름 아래 ― 젠더화 된 인권의 사각지대

그런데 사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국제노동기구(ILO)의 여러 협약, 그리고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등은 모두 여성과 이주민의 권리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인권은 본래 국경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왜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못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전경옥은 이러한 국제규범들이 여전히 ‘남성 중심의 노동 모델’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논의될 때, 그 기준은 대체로 공장이나 제조업 같은 ‘공적 일터’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를 상정합니다. 반면, 가정 내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나 돌봄 노동자와 같은 여성의 노동은 거의 고려되지 않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혹은 겉보기에 중립적이더라도 남성 중심의 가치와 행동방식을 기준으로 삼거나, 성별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치거나, 성별에 따라 기대가 다를 때 '젠더화'되었다고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여성이주노동자의 노동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이 권리가 젠더화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국제협약이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모든’ 안에는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노동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지만, 고용주의 가정에 거주하며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자유롭게 직장을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성이주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성적 착취나 폭력을 당해도 체류 자격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보편적 인권’이라는 말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여성이주노동자에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다. 전경옥(2016)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젠더화 된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부릅니다. 법과 제도의 문장 속에 ‘여성’이라는 주체가 명시되지 않는 한, 아무리 정교한 규범이 존재해도 현실의 폭력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인권을 내세우는 나라에서, 왜 그들은 보호받지 못할까

한국은 여러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하며, 겉으로는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과 제도의 틀과 현장의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고용허가제’입니다. 2004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를 고용주에게 종속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직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없고 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해도 고용주의 허락이 없으면 다른 일을 구할 수 없습니다. 제도상으로는 ‘합법적 고용’이지만, 현실에서는 ‘합법적 지배관계’인 셈입니다. 

특히 농업, 가사노동, 엔터테인먼트 등 여성 비율이 높은 산업에서는 착취와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열악한 숙소, 장시간 노동, 성희롱, 심지어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까지.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제도적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입니다.

국제기구들도 한국 정부에 수차례 개선을 요구해 왔습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와 ILO는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변화는 미미합니다. 이는 제도 운용상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법과 제도의 설계 단계부터 ‘여성’이라는 주체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존재하더라도 그 문장 속에 여성이 명시되지 않는다면, 인권은 여전히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보편’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 잠깐, 고용허가제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사업장에서만 일해야 합니다. 기본 근무기간은 3년이며, 사업주의 요청이 있을 경우 최장 4년 10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일터를 옮길 수 없습니다. 만약 직장을 떠나게 되면, 불법체류 신분으로 전락해 생계 기반을 잃을 위험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일정 기간의 계약을 의무화하지 않으면 이주 관련 절차를 모두 밟은 사업주가 결국 필요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외국인 인력을 보다 안정적으로 고용하기 위한 장치로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안정’이 사업주 쪽에만 편중되어, 노동자와의 권력 불균형이 심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들이 불리한 조건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25.10.13. 뉴스타파. "[허가된 착취①] 다치고, 버려지고, 죽는다...고용허가제에 갇힌 이주노동자")

📌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